평범한 재능으로 살아가기
- 퐁당 에디터
- 2021년 1월 4일
- 4분 분량
탁구 만화이기도 한 <핑퐁>의 주인공 스마일은 보통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애초에 천재인 페코에게 반해서, 그를 따라서 탁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천재인 페코는 금방 싫증을 내고 그만둬버렸다. 보통의 인간인 스마일은 그만둘 수도 없었다. 이미 부생활을 시작했는데 딱히 그만둘 이유도 없고, 별다르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계속한다. 머리는 나쁜 편이 아니라서 탁구의 요령을 익혔다. 끈질기게 노력하고 이기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서 스마일은 꽤 좋은 탁구선수가 된다. 1등은 아니지만, 최고는 아니지만 나름 잘 하는 선수.
세상은 불합리하다. 모든 것을 고려하고,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축약한다면 나름 공평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에게는 대체로 불합리하다. 재능이란 것도 그렇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아예 범접도 할 수 없는 재능이란 것은 존재한다. 나이가 들면서 재능을 소비하고 탕진하는 이들도 있지만 젊었을 때의 재능이란 그야말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단 하나의 재능만으로도 찬란하게 빛나 보인다.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시스템 같은 것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 페코처럼. 그러나 <핑퐁>이 말하듯,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시스템은 재능을 가두거나 포획해버린다.
시스템은 중요하다. 조직은 하나의 개인에 의존하면 너무나 리스크가 크다. 그가 사라지거나 부패해지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그래서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은 균형이다. 너무 재능에 의존하면 위기의 순간에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시스템에만 의존하면 개인의 재능이 휘발된다. 대체로 조직은 후자의 경우로 흘러간다. 개인의 재능을 살려주기보다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관료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인다. 딱히 재능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저 자신의 위치를 보존하고 업무가 잘 흐르는 정도로만 움직인다.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데도 그냥 흘러간다. 답답해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언론사에 취업을 해서 기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기자의 일은 회의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이다. 주간지를 만들었다. 월화에 취재를 하고 수요일부터 기사를 마감하고, 목금에는 마감을 하면서 이미 넘긴 기사의 디자인을 확인하고 수정하고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음 주 잡지를 만들기 위한 회의를 한다. 매 주마다 같은 공정이 반복된다. 일간지, 주간지, 격주간지, 월간지를 만들어 봤다. 웹 매거진도 만들었다. 이 중에서 주간지가 가장 고되다. 이번 주 마감이 끝나고 마무리되는가 싶으면 다음 호를 생각하고 바로 취재와 집필에 들어간다.
주간지는 수목금 계속 마감이 있다. 영화잡지라면 주로 수요일에 신작 리뷰나 짧은 기획 기사를 넘긴다. 목에는 특집과 대부분의 기사다. 금에는 단신 기사와 게시판 등등이 마감이다. 특집 기사를 맡으면 다른 기사의 부담은 줄여준다. 하지만 대체로 시간이 부족하다. 주간지는 언제나 바쁘고 사람이 부족하다. 때로는 기자들이 줄줄이 그만뒀는데, 새로운 기자를 채용하는 데 시간이 걸려 주간지를 취재기자 5명이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 수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모든 시간이 흘러간다. 너무나 빡빡하다.
개인마다 스타일이 있다. 마감을 잘 지키는 기자도 있다. 마감을 계속 늦추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사를 쓰는 기자도 있다. 마감 시간보다 미리 기사를 넘기는 기자는 거의 없다. 그러니까 주간지는 거의 초치기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마감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을 조율하는 사람은 편집장이다. 취재팀장도 닥달을 하기는 하지만, 자기 기사 마감도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편집장이 마감을 닥달하고, 넘겨버린 마감 시한을 재조정하고, 때로는 기사를 빼거나 줄이거나 하는 것도 결정한다. 잡지의 꼴을 만드는 것도 편집장이고, 마감의 흐름을 조정하는 것도 결국은 편집장이다.
나는 보통 마감을 지키는 편이었다. 입사하고 한 3달 정도는 정해진 마감을 꼬박꼬박 지켰다. 그런데 하나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요일 저녁에 편집장이 체크를 한다. 주로 특집과 기획 기사가 얼마나 진도가 나갔는지를 확인한다. 늦어도 금 오전까지는 마감이 되어야 디자인 작업을 할 시간이 있으니까. 특집과 기획을 맡은 기자에게 진도를 물어보고,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면 그 외의 써야 할 기사가 뭐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이미 다른 마감을 끝낸 기자에게 그의 기사를 넘긴다.
그럴 수 있다. 아니 필요한 일이다. 주간지, 월간지 마감은 반드시 시간을 지켜야 하고, 막판에 누군가에게 일이 몰려 있으면 그것을 조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면?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항상 정해져 있다면?

시스템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불복하거나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억울해도 그냥 따라가거나.
마감을 정확하게 지키고 나니, 목요일에 추가로 일을 더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입사 초기에는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한결같았다. 마감을 늦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었다. 그들의 일은 늘 누군가가 떠맡았다. 그냥 일의 속도가 느리거나 더욱 꼼꼼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동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느슨했다. 보통 수요일부터 마감을 시작했다. 오후에는 슬렁슬렁 일하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조금 열을 올리고, 결국은 새벽에 끝을 내는 패턴의 기자는 꽤 있었다. 어차피 마감은 오는 것이니, 최대한 미루다가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보통의 법칙이었다. 나는 성격상 그러기 힘들었다. 일단 있는 일을 처리해야 다음 일도 준비할 수 있고, 마음도 편했다.
석 달간 지켜보고, 추가로 주어진 일도 다 하다가 자구책을 마련했다. 우선은 마감 기한에 맞게 기사 작성을 다 한다. 다만 원고를 데스크에 넘기지 않는다. 아직 기사 안 됐냐고 독촉이 들어올 때까지는, 나의 원고가 끝난 것을 타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원고 언제 끝나냐는 데스크의 말을 들으면 아직 조금 남았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마지막에 추가 원고 쓰는 일이 조금 줄었다.
치사한 짓이다. 안다. 하지만 주간지이건, 월간지이건 잡지 마감을 하는 것은 대단히 피곤한 일이다. 일을 주나 달 전체로 늘리면 보통 사무직과 비슷하겠지만 마감 직전의 업무와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석 달간 주간지 마감하다 당시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도저히 만날 시간이 없어서. 이건 정상이 아니다. 그걸 개인이 다 감당하며 가려면 방법이 많지 않다.
조직은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한 개인만 유독 일이 몰린다면 조정을 해야 한다. 미리 주마다 할 일을 어느 정도 공정하게 분배하지만, 마감이 되어서 누군가에게만 계속 집중된다면 문제가 있다. 몇 번은 가능하다. 그러나 상습적이 된다면 대책을 마련하거나, 일을 계속 더 한 사람에게 적절한 포상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안 그런다. 그런 걸 일일이 계산해서 포상을 하는 것이 귀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동료의 일을 나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무엇이건 합리적이지는 않다.
성과급이 주어지지도 않았고, 연봉이 더 오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일을 피하려 했다. 아무리 열심히 뭔가를 해도 평가는 없었다. 대부분은 상사의 마음에 누가 더 들어가는가, 더 친한가에 의해서 상벌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자구책으로 일을 덜 할 수밖에. 나도 살아야지.
이기는 방법은 심플하다. 이기는 방법을 찾고, 지는 방법을 피해가는 것이다. 무엇이 더 이익인지 따지면서 지금을 선택하는 것이다. 목표가 지금의 성과라면 그것에 올인. 비전을 위해 지금의 불이익이나 모멸을 감수하겠다면 그것도 좋다.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 👉 글 쓰는 일이 좋아 기자가 되었다.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등을 썼다. 최근에는 직장인을 위한 <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란 제목의 직장인 생존철학 에세이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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