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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일간 세계여행

9점.

부끄럽지만 소위 ‘수포자(수학 포기자)’라 불리던 내가 1998년 수학능력시험, 80점 만점의 수리영 역에서 획득한 점수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 수학 공부하느라 애썼으니 그냥 맞추라고 준다는 객관식 2점짜리 3문제 그리고 3점짜리 달랑 한문제. 그렇게 총합 9점.


그렇다 보니 아직까지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3점짜리 문제는 바로 1부터 100까지 더하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객관식 문제를 나름 전략적으로 배분해 찍어주고, 주관식 답은 1로 통일한 후, 남는 시간 모두를 이 문제에 올인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능력으로 풀 수 있는 유일한 문제이기에 더욱 더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풀 수 있는 문제가 없다 보니 시험지에 남는 공간은 수두룩했고, 시험 시간 역시 차고 넘쳤다.

검정색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1부터 100까지 하나하나 더하고, 검산까지 한 끝에 정답인 5050을 맞출 수 있었다. 훗날 알고 보니 ‘등차수열의 합’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란다. 비록 교과서에서 본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오늘날 ‘수학의 왕자’라는 애칭이 널리 알려진 독일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 히 가우스가 10세 때 단 몇 초 만에 풀었다는 바로 그 문제란다.


한달 후. 성적표가 나왔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찍은 객관식은 모두 빗나갔고, 주관식 역시 그 흔 한 1이란 답은 없었다. 수리영역 전국 등수를 보니, 그해 전국에 몇 명이 수학능력시험을 봤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밑바닥을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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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는 바로 그날부터 가끔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흰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아 누우 셨다. 재수를 하라며. 허나 수학을 포기한 자에게 재수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수리 영역에서 제대로 죽을 쑤고 나니, 고향인 서울에서는 마땅히 갈 수 있는 대학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20대의 시작과 함께 지방에서 나의 자취 인생도 시작됐다.


7살 난 아들이 아주 간단한 더하기 문제를 자꾸 틀려 아내한테 혼이 났다. 10까지는 손가락을 꼽 아가며 더하지만 10이 넘어가면 도무지 맞추지를 못했다. 아내는 이대로 초등학교 가면 어쩌냐며 벌써부터 고민이다.


그런데 마냥 해맑던 아이가 더하기 좀 못한다고 혼날 때마다, 울적해 하는 모습을 보면 좀 안쓰 러운 마음이 든다. 태어날 때만해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했는데. 아내에게 너무 다그치지 말라 고 말하고 싶지만. 괜스레 엉망진창 수학 유전자를 물려줬다고 구박만 받을까 꾹 참았다. 더하기 못하면 계산기로 하면 된다고. 머리 싸맬 필요 없다고. 누굴 닮았겠는가. 속으로 외쳤다.


내 나이 이제 불혹을 넘겼는데, 살아보니 더하기 아니 수학 좀 못한다고, 못사는 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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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부모 욕심으로 아이의 순수한 꿈에 곰팡이가 피지 않았으면 한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온갖 방법이 난무하고,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이의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옆집 아이도, 같은반 친구도 모두 이기려는 아이보다는 차라리 수포자로 남길 바란다. 전국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향했던 '첫 꿈'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아이가 자라면서 문득 문득 배낭을 둘러메고 연애시절의 풋풋한 추억이 담긴 호주를 시작으로 뉴질랜드, 태국,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이집트, 터키를 돌며 낯선 만남 속 행복을 찾아가던 101일간 신혼여행을 다니던 당시가 떠오를 때가 있다. 참고로 우리가 신혼여행 일정을 101일로 잡은 것은 ‘서 있는 우리 부부 사이에, 배낭을 포개 놓은 모양’을 의미한다. 이집트에서 터키로 넘어가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우리 앞쪽으로 일본에서 온 아빠와 아들이 보였다. 초등학교 또래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그 아이의 해맑던 미소를 아직 난 잊지 못한다. 비록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대출에 허덕이고 있지만. 101일간 신혼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했던 약속. 훗날 아이와 함께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던 그 말이 현실이 되길…서 있는 우리 부부 사이에, 배낭이 아닌 아이가 서 있는 모양을 딴 111일간 세계여행을 기다려 본다.

에디터 신동민 👉 여행 작가와 기자로 오랜 기간 일해왔다. 요즘은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미디어를 운영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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