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3월
- 퐁당 에디터
- 2020년 5월 8일
- 3분 분량
#1. 서울 집 / 아침 12월의 어느 날. 정말로 한가하진 않다. 정리하고 치우고 버리고 새로 준비할 것들이 집안에는 넘친다.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위한 뒤치다꺼리도 있다. 물건만이 아니라, 시간과 약속 일정들도 정리하고 치우고 버리고 새로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서 삶은 굴러가고, 아이들은 자란다. 대개 주부의 일이란 그렇다. 오늘도 현관에서 아이들을 배웅했고, 남편에겐 차 조심을 하란 얘기를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열어놓은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는 순간, 피로감이 일었다. 잠시 누워 있다가 시작할까, 그런 생각으로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다. 한순간 잠에 빠져드는 약이 있으면 좋으련만. 괜히 휴대폰을 열고 지난 톡 메시지들을 다시 읽는다. 간밤에 실언하진 않았는지, 적당하고 예의 있게 이모티콘은 적당했는지, 습관처럼 체크한다. 캘린더를 열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본다. 오후 병원 일정을 새로 넣는다. 새벽녘 기침을 하던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학교를 보냈어야 하나, 약간의 후회를 했다가 이내 이불을 푹 뒤집어쓴다. 잠이 오려나.

얼핏 잠이 든 것 같다. 꿈에 아는 사람들이 나왔는데 현실도 비현실도 아닌 경계선 어딘가의 어정쩡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기자였고 기사 마감과 발제로 쫓기고 있었다. 눈을 떠서, 마감 같은 건 없는 현실을 자각한다. 안도하면서도, 어딘지 개운치 않다. 오래전 일터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졌다는 생각 때문일 거다. 그 존재에 일말의 정체성을 두고 있는 나는, 자주 떠밀리고 부유한다. 시간은 나아가지 못하고 언제부턴지 내 눈으론 볼 수 없는 저편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어쩔 수 없는, 열패감이다. 괜한 잠이었나. 겨우 20분이 흘렀을 뿐이다. 생각과 달리 피로감은 나아지지 않고, 여기저기 쑤시고 머리가 무겁다. 마음속 구석구석을 부유하다가 그대로 가라앉아 버린 일상. 좀 가벼워지고 싶다.
#2. 제주 공항 / 낮
13일 오후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따뜻하다. 이 따사로움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여긴 12월의 3월이다. 3월의 봄볕이 어깨에 닿는다. 조금은 파리한 것 같은 야자수 사이로 햇살이라는 것이 내리고, 나는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에 왔음을 실감한다. 칼처럼 치고 간 서울의 겨울바람이 떠올라 더욱 감사하다. 일상의 권태니 피로니 정체성이니 블라블라~ 햇볕은 정말, 진리 그 자체 아닌가. 평소 내 습관대로 생각이 혼자 멀리 간 것 같다. 나는 그저, 일조량이 부족했던 게다.
#3. 서귀포의 한 호텔 / 밤
나이 들며 여행의 일정은 최대한 간소하게 짠다. 많이 걷고 많이 보는 것이 싫다. 대신 많이 먹고 한곳에 진득하니 머무른다.
서귀포의 한 호텔에서 화산온천수에 몸을 담근 후, 그 호텔에서 주는 저녁 정식을 호사스럽게 먹어 치운다. 꽃향기가 나는 맥주 한 잔도 잊지 않고. 드문드문한 야간 조명 사이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뿜는 1층 야외 정원이 테라스 창가에 비친다. 인공의 손길이 덜한 제주의 벌판처럼 휑한 그 호텔의 정원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데도 언덕 아래 평지 끝에 닿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것 같은 바람을 안고 있다. 30여 석밖에 되지 않는 레스토랑 홀 안으로 제주도의 검은 바다가 밀려온다. 그 바다에서 길어 올렸을 굴 한 조각을 먹고, 살짝 배앓이를 한 그 밤. 뭐 어떤가. 낭만에 취하기로 한 제주도 푸른 밤의 정취를 깨지 마시라!
#4. 정난주 마리아 묘 / 낮 (회상: 김대건 표착기념관 내 기도방 / 낮)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천주교 순례길에 들르자는 남편의 일정에 따라준다. 첫날엔 한국 최초의 신부님인 김대건 안드레아가 표착한 곳에 지은 기념관도 들렀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며 생각했다. 왜, 죽을 것을 알면서 신부가 되고, 사제서품을 받은 후로 한국 땅에 발을 디뎠을까. 운명처럼 표류하여 도착한 제주에서 생명을 보전할 생각을 않고, 기어이 육지로 가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훌륭한 자의 믿음을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의 전부가 신이며, 신이 이끄는 삶만이 그에겐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위대한 자에게 목숨은 부지하는 것이 아니고 의미를 구현하는 것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어려운 생각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슬펐다. 죽음은 무섭고 슬프니까. 그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용감함도 함께 느껴졌다. 신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 모른다. 위대한 인간으로 인해 존재가 증명되는 신.
마지막 날 들를 곳이 대정읍에 있는 정난주 마리아의 무덤이다. 거대한 십자가와 제단 사이에 그녀의 묘가 있다. 그녀가 누군지는 잘 모른다. 정약용 집안의 사람이고, 남편은 그 유명한 백서를 쓴 황사영이다. 황사영은 양반이면서도 서양 세력을 끌어들여 왕권을 전복하고 신앙의 자유를 달라고 백서를 썼다는 설명을 남편은 곁들였다. 한마디로, 그 시대에 ‘미친 짓’이었다는 것. 가문은 풍비박산이 나고 아내 정 마리아는 제주의 노비로 왔다. 역시 노비가 될 운명인 갓 태어난 아들은 육지의 어느 섬에 두고 와서, 양민으로 잘 자라 후손이 남았다고 한다. 제주로 온 양반 출신의 그녀는 ‘서울 할머니’로 불리며, 섬사람들에게 믿음과 인문의 향을 남기고 떠난 듯하다. 비천한 신분으로 고된 삶을 살았지만 정신을 붙들고 삶으로 고귀함을 보여준 여인이라서, 그녀를 추모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묘는 제주도 대정읍 동일리에 있다.
#5. 정난주 마리아의 묘 옆 편의점 / 낮
편의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 그 앞 벤치에 앉는다. 오래된 단층 주택들이 드문드문 들어선 작은 동네. 이틀 전보다 한층 더 따사로워진 햇살이 벤치 의자를 달궈 놓았다. 등 뒤로 닿는 제주의 햇볕도 따뜻하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어간 그들과 같지는 않아도, 우리 역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신은 어디에 있으며, 나는 어디로 가는지, 그런 어려운 질문이 떠오를 때도 있을 만큼. 그때의 나는 헛헛하고 아프다. 가끔은 나 자신이, 이 삶이 쓸모없게도 느껴진다.
다시 일상은 시작될 것이지만, 나는 이 고요한 제주의 햇볕을 업고 출발하려 한다. 서울에도 곧 봄은 올 것이고 아직 찬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3월의 햇볕이 등 뒤에 닿으면 100여 년 전 죽은 사람들이 생각날 것이다. 낮게 슬프게 가라앉은 그들의 고통 뒤에도, 제주의 햇볕은 따스하게 내려앉았을 것이다. 12월의 봄날처럼.
이현정 작가
👉 전 한국일보 기자.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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