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의 남친
- 퐁당 에디터
- 2020년 5월 8일
- 3분 분량
내 남자친구는 동쪽으로 9천km 떨어진 곳에서 지낸다. 거의 매일 연락하는 우리에게도 물리적 거리는 종종 확연하다. 그런데 지난 한 달여 간, 우리의 대화에서 물리적 거리를 느낀 날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사실 매일 서로를 찾는다. 서로 자주 말을 건넨다. 하지만 내 말이 그에게 제대로 가 닿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 그의 세계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당연한 게 없다. 뭐가 그리 모호하냐고? 우리 사이에는 인터스텔라가 있고, 나의 세계와 그의 세계와 인터스텔라에는 심술궂은 도깨비가 산다. 도깨비의 이름은 전기, 그리고 네트워크. 전기가 끊기면 무선 네트워크도 끊기고 이어 통화가 끊어지거나 채팅이 9천km 사이 어딘가를 떠돈다. 연애 초반에는 그걸 모르고 한참을 혼자 떠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젠 전기가 나가면 그가 먼저 이야기한다. "전기 나갔어요."

그리곤 굿바이 루틴이 이어진다. 그게 전달될 때도 있고, 허공에 사라지거나 뒤늦게 도착할 때도 있다. 때로는 발전기가 재빨리 돌아가며-그의 학교에는 ‘발전기’라는 세상 고맙고도 놀라운 시설이 있다!-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아니, 와이파이가 없으면 랜선으로 연결하면 되잖아! 그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잖아’와 같은 생각이라는 건 뒤늦게 알았다. 아프리카에는 유선 전화가 보급되기 전 무선 네트워크가 먼저 들어갔단다. 그래서 유선 전화는 없어도 휴대폰은 있다. 그게 가능하냐고? 서구에서 몇백 년에 걸쳐 진행된 근대화를 우리는 지난 백여 년 동안 압축해 경험했다는 걸 상기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문제는 네트워크가 여기처럼 안정적이지도 않고 속도도 느리다는 것. 그래서 종종 인터스텔라로 빠지거나 내 목소리가 끊겨 들리거나 이모티콘이 일부만 가기도 한다. 그러니, ‘여보세요’가 반만 들리면 ‘여보’가 들릴까 ‘세요’가 들릴까가 궁금하다, 나는. 졸라맨 둘이 춤추는 이모티콘을 보내면 뽀뽀하는 걸로 오해할까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사실 이런 건 연애 초반이었고, 이제 불안정한 전기와 네트워크는 우리 사이의 상수이다. 종잡을 수 없는 상수에 기대 연락하면서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는 게 이 연애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이를테면, 이곳이 미세먼지가 심해 코가 막혀도 입으로 숨 쉴 수 없다고 하면 거기서는 흙먼지가 날려 입으로 숨 쉬면 안된다고 하는 식이다. 사랑은 참, 별게 다 재밌다.
그가 사는 곳은 로마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1년이 13월, 그래서 2020년이 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고, 새해는 9월에 시작하고 성탄절도 당연히 날짜가 다른데, 어쩌다 부활절이 겹치는 해도 있었다. 그럴 때 우리는 신기해한다. 그의 집에는 종종 바분-사바나개코원숭이. <라이언킹>에 나온, 대걸레처럼 생긴 바로 그 원숭이다-이 들어와 오렌지나 바나나, 양파를 물고 도망친단다. 그래, 뭐 좀 나눠 먹을 수도 있지. 그런데 원숭이가 양파도 먹나요? 이제는 창문을 왜 닫지 않았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런 우리가 지난 한 달여 간은 줄창 코로나 이야기만 했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나는 2월 한 달간 만든 추억을 되새기며 웃고 울어야 한다. 2월은 그가 한국에 머무는 때이고, 우리가 ‘실제로’ 만날 수 있는 달이다. 이것도 우리의 상수였다. 그런데!!! 코로나, 그 망할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 2월 우리의 상수는 불안정한 전기뿐이었다.
처음에는 비행기 표가 문제였다. 우한 교민들이 전세기를 기다릴 무렵, 그가 머무는 곳에선 중국과 동아시아 노선의 운항을 멈춘다는 소문이 돌았다. 조금 지나자, 그의 가족은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맘껏 다니지도 못할까 걱정을 했고, 나는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간 그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격리될까 염려했다. 그렇게 매일 추이를 지켜보다 휴가를 미루기로 전격 합의했다. 합의는 개뿔, 다른 도리가 없었다. 휴가를 미뤄도 괜찮다고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언제 한국에 올 수 있을까? 나는 매일 뉴스를 봤고, 그도 매일 뉴스를 봤다. 그러는 사이, 그는 자신의 연구 모델에 매일의 확진자 데이터를 담아 다음 날의 확진자 수를 예측하고 있었다. 제법 믿을만한 정확도가 나오자 조심스럽게 변곡점을 예상했는데, 바로 그다음 날부터 그래프는 예측을 벗어났다. 집단감염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제 변수는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물리적으로 매우 가까이, 함께 모여 있던 사람들.
코로나가 9천km나 떨어져 있는 우리를 같은 걱정으로 묶어 버렸다. 엄마는 9천km 떨어진 곳에도 마스크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는 여기 식구들의 마음은 괜찮은지 궁금해한다. 엄마가 서쪽으로 11,000km 떨어진 곳에 사는 막내가 입덧을 하는 데도 갈 수가 없어서 애를 끓이다 병이 났다고 하자, 그는 잘 먹지도 못한다는 내 동생이 여기와는 그 나라의 보건체계 때문에 고생하게 될까 우려한다. 서로들, 여기에 앉아 거기와 저기를 걱정하고 근심한다.
우리만의 걱정은 아니다. 인터스텔라 같은 거 없이 살던 사람들도 걱정으로 묶여 버렸다. 온 나라가, 어쩌면 전 세계가. 이쯤되면 코로나는 변수인 걸까, 상수인 걸까.
아무튼, 걱정으로 그치면 좋겠다. 모두의 마음이, 불안이나 공포가 아니면 좋겠다.
세계는 하나이고, 사랑하는 마음도 하나이다. 뜬금없대도 어쩔 수 없다. 인터스텔라를 헤매다가도 기어코 메시지가 들어오는 걸 보면 사랑하는 마음은 길을 잃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니, 이 코로나 변수가 변수답게 조만간 사라지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가 얼굴 보고 마주 앉아 손도 좀 잡아보며 데이트를 하지!!
덧붙이자면, 지구의 지름은 12,742km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표면적의 거리는 지름보다 훨씬 크겠지만. 뭐 그렇다는 말이다.
에디터 이명제 👉 에디터이자 칼럼니스트. 9,000km 급 초장거리 연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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