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배운 것
- 퐁당 에디터
- 2021년 8월 9일
- 4분 분량
나는 올해로 3*살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진다더니 2021년도 어느새 절반을 훌쩍 지나가고 있다. 나의 어린 남편은 김지은 내일 모레 마흔이네! 하고 놀려대지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라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나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나의 오랜 대학 친구는 김지은 너 29살에 죽는다고 하지 않았어? 라고 놀리며 요절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20대를 추억하게 한다. 그때는 묘하게 30이라는 나이가 너무나 거대하고 크고 많게 느껴졌었다. 아무래도 20대 초반에 심취해 있었던 다양한 소설들의 영향이지 않을까 하는데 김승옥 소설가의 어떤 소설에서도 김형 우리는 너무 나이 들지 않았습니까? 나는 너무 늙어버린 기분입니다...라고 할 때 ‘나’의 나이가 25이었던 점을 떠올려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또 어떠한가. 어쨌든 나는 29살을 넘겨 무사히 30이 되었고 사실 삼십대도 조만간 끝나려고 하는 현실 앞에 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내가 원했던 만큼의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꽤 서운한 일이구나 싶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논문 심사에서 떨어졌을 때, 열심히 써서 투고한 원고가 거절됐을 때, 강의 평가가 예상했던 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 남편이랑 싸웠을 때처럼 누군가에게는 그리 심각한 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 삶의 사건들 속에서 나는 가끔 죽고 싶어진다. 어렸을 때처럼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는 않지만 나는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한다.
아... 죽고싶다 진짜...
그리고 실질적 방법을 모색해본다. 스위스를 가서 외국인으로서 안락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찾아보거나, 국내에서 편안하고 아프지 않게 삶을 종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궁리하다가 정말 머저리 같구나, 라며 자기혐오에 빠진다. 이런 생각의 과정은 나의 첫 고양이가 하늘로 떠나기 전까지 계속됐었다. 최근에도 때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나의 용감하고 우아했던 첫 번째 고양이 꽁이를 떠올린다. 꽁이는 2005년 10월의 어느 날부터 2020년 7월 9일까지 15년을 함께한 내 인생의 첫 고양이다. 내가 고양이를 그저 동물이라 여겼던 시절에 만나 정말 많은 깨달음을 주고 떠난 소중한 생명이다.

꽁이는 20대 초반부터 함께했기에 내 인생의 다양한 실패를 함께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의 유년기에 좀 더 좋은 사료를 먹이지 못했던 것이 영원한 한으로 남을 것 같다. 좀 더 좋은 사료를 먹였더라면 더 오래 살아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꽁이가 떠난 후 지속적으로 곱씹곤 했다.
사실 꽁이는 2017년에 크게 아파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던 경력이 있다. 그때 키우던 고양이들 세 마리가 동시에 아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동물병원에서 권했던 치료를 받던 중 깜또라는 아이가 먼저 떠나는 사건이 있었다. 누구도 옆에서 임종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우리 가족들은 크게 상심했다. 그래서 함께 입원해 있던 꽁이는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해주자는 의견으로 동물병원에서 퇴원을 시켰다. 수의사는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를 그의 남은 생으로 가늠하며 마음의 준비를 당부했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꽁이는 3년이나 더 산 것이다! 나는 꽁이가 우리 가족들의 사랑을 분명하게 느꼈고 삶에 대한 큰 의지로 병원에서의 진단을 무시하고 혹은 이겨내고 3년을 더 산 것이라 생각한다.
7월 9일이 지나 이제 꽁이가 없는 삶의 1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문장 안에 그 아이의 이름을 넣으며 전만큼 울지 않는다. 이제 간신히 그 아이의 이야기를 써낼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꼭, 너에게 나는 어떤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늘 빚진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막상 꽁이가 떠난 날에는 걱정했던 것만큼 많이 울지는 않았던 것 같다. 꽁이가 떠난 7월의 이전에 설마? 혹은 혹시? 싶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고양이는 2020년이 되자 눈에 띄게 쇠약해졌는데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여전히 왕성한 식욕과 다정함이 넘쳐났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꽁이의 육체는 날이 다르게 쇠약해지고 말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꽁이가 떠난 날 느꼈던 슬픔보다도 훨씬 컸음을 고백해야겠다.
꽁이는 고양이답게 언제나 호기심이 넘쳤고 단층 주택에 살아서인지 집 밖의 세계에 대해서도 늘 궁금해 했다. 그래서 소싯적엔 집 밖을 탈주해 온 동네를 뛰어다녀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은 꽁이를 잡으러 정말 긴 시간 동안 동네를 뛰어다녀야 했다. 또 집 안의 높은 곳이란 높은 곳은 모두 점령해야 성에 차 했기 때문에 냉장고 위든 장롱 위든 모든 곳이 꽁이의 영역이었다. 스크래치는 또 얼마나 좋아했던지... 집 안에 남아나는 가구가 없었다. 특히 식탁 의자는 꽁이가 정말 좋아하는 발톱긁개였는데 엄마와 아빠는 경악했지만 나는 언젠가 저 너덜너덜한 식탁 의자가 그를 추억하게 하는 흔적으로 남아 우리 식구들을 오래 아프게,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하리란 예감에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열정과 사건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이 2020년을 기점으로 하루가 다르게 소진해갈 때. 무엇하나 해 줄 수 없음에 나는 정말 절망했다. 진심으로 나의 수명을 그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내게 남은 시간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중의 절반을 떼어 꽁이에게 주고 같은 날 죽을 수 있기를 매일 밤 기도했다. 물론 나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은 스크래치와 쉼터로 동시에 기능하는 바구니 형태의 장난감을 사줬다. 꽁이가 신나서 들어가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걸 보고 눈물이 터졌다. 관절의 힘이 전과 다르고 발톱을 더 이상 숨기지 못해 종이 표면을 딛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다. 대성통곡을 하는 나를 꽁이는 그 깔깔한 혀로 오랫동안 핥아주었다. 자신의 슬픔보다 울고 있는 나를 먼저 달랬던 나의 고양이. 코는 여전히 촉촉했고 핑크빛 젤리는 말랑 말랑 사랑스러웠다. 그냥 기력이 조금 저하됐을 뿐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는 여전히 그 고양이였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앞에 꽁이는 언제나 용감했으며 태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다.
내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이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고양이 앞에서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꽁이는 언제나 모든 것에 최선이었구나, 라는 깨달음도 이즈음 들게 되었다. 자꾸 울지 말고, 슬퍼만 하지 말고 이 아이의 남은 나날들에 최대한의 사랑을 표현하자는 결심을 했다.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자꾸 인간의 일이 생겨 많은 시간들을 고양이들만의 고즈넉함으로 채우게 했다는 슬픔이 밀려들지만...
그래서 나는 자꾸 죽고 싶다거나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꽁이의 삶을 생각한다.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생에 얼마나 열심이었고 최선이었는지를. 고양이별로 떠나기 전날까지도 내가 사다준 간식을 맛있게 골골 소리를 내며 먹고 할 수 있는 만큼 그루밍을 했으며 언제나 깨끗하게 화장실의 모래를 덮었었는지를. 나의 고양이가 누렸던 근사하고 열정으로 충만했던 삶을.
👉 김지은 소설 읽기가 취미이지만 시를 쓴다. 남편 고양이 둘과 함께 살고 있다. 왼손잡이라 과일을 깎으면 사람들이 조바심을 내지만,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다듬어 내는 재능도 있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퐁당통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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