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똑같의 대탄생
- 퐁당 에디터
- 2020년 5월 8일
- 3분 분량
째깍째깍. 몇초만 더 지나면 다른 날이 시작된다. 밤거리엔 마스크를 쓴 사내들이 지나간다.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속엔 주말의 하루가 녹아들어있다. 주말이니까 마음껏 마셨으리라.
토요일. 코로나19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바이러스로 인해 나는 머리도 감지 못한 채로 노트북 가방을 챙겨야 했다. 긴급한 브리핑이 있다는 문자를 받고 세수만 겨우 한 채로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지금, 나는 12시가 다 된 시간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다시 켠다.
몇 시간 전 나는 서울 여의도의 한 장례식장에 앉아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었던 후배의 모친상 소식을 접했던 터였다. 문상객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문상을 하러 왔다. 육개장과 밥, 떡과 반찬을 받아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회사와 선거, 창궐하는 바이러스 이야기가 오갔다. 어느 자리에선 술에 취한 조문객의 목소리가 커졌고, 어머니를 잃은 상주는 부은 눈으로 조문객을 받았다.

째깍째깍. 몇초만 더 지나면 다른 날이 시작된다. 늦은 밤거리엔 마스크를 쓴 사내들이 지나간다.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속엔 주말의 하루가 녹아들어있다. 주말이니까, 마음껏 마셨으리라.
토요일. 코로나19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바이러스로 인해 나는 머리도 감지 못한 채로 노트북 가방을 챙겨야 했다. 긴급한 브리핑이 있다는 문자를 받고 세수만 겨우 한 채로 지하철을 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12시가 다 된 시간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다시 켠다.
몇 시간 전 나는 서울 여의도의 한 장례식장에 앉아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고 떠들었던 후배의 모친상 소식을 접했던 터였다. 문상객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문상을 하러 왔다. 육개장과 밥, 떡과 반찬을 받아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회사와 선거, 창궐하는 바이러스 이야기가 오갔다. 어느 자리에선 술에 취한 조문객의 목소리가 커졌고, 어머니를 잃은 상주는 부은 눈으로 조문객을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신문을 읽고,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매일 쓰는 노트북을 챙겨 늘 다니던 골목을 지나, 지하철을 탄다. 내가 타는 지하철 승강장은 의식하지 못했으나 알고 보니 늘 같은 곳이었고 내리는 곳 역시 같다.
시청역에서 기자실까지 가는 길마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다. 더러는 광화문역에서 내려 걸을 만도 한데, 난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2호선 충정로역에서 한 번 갈아탄다. (5호선에서 2호선 충정로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빵집에서 나는 갓 구운 마늘빵 냄새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유혹에 빠뜨린다. ‘저걸 먹으면 살이 찌겠지’와 ‘그래도 마늘빵 냄새가 향긋하니 한 번 사먹을까’란 고민을 거짓말 한번 안보태고 말하건데, ‘매일’한다. 결과는 어떻냐고? 빵집 사장님이 알면 서운해 하겠지만 나는 아직 그집 빵을 사먹어 보질 못했다. 아침 출근시간이라 마음이 급한 탓에, ‘내일 사먹어야지’란 결론을 매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 써놓고 보니 나는 정말 단순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삶을 소망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이가 40대 중반으로 향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발가벗고 뛰어다니던 딸아이는 소녀가 됐다. 제 방에 들어가 거실로 나오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내 몸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고, 눈은 나빠져 안경을 쓰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팔순을 넘긴 엄마는 얼마 전 전화를 걸어와 화를 냈다. “너희 집 문이 망가졌다”는 것이었다. 새로 이사 간 집 문의 비밀번호를 알려드렸는데, 문이 열리질 않는걸 보니 ‘문이 망가진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주의 주말, 지팡이를 짚은 엄마가 우리집을 다시 찾아왔다. 우리집 현관문이 ‘망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엄마와 문밖으로 나섰다. 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엄마, 비밀번호 눌러봐.”

지팡이를 짚은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슬로우 모션을 보듯, 엄마의 손은 정말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검지가 현관문 도어락의 터치패드를 건드렸다. 수십초는 지난 것만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띠릭’하는 소리와 함께 번호판에 불이 들어왔다. 엄마의 검지는 환히 빛나는 번호판 앞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엄마의 입은 ‘4985***’ 번호를 부르는데, 엄마의 손은 4와 9를, 그리고 8을 가르치지 못했다. 불과 몇십초가 되지 않을 시간이었는데, 내겐 한두시간이 흐른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엄마 왜 그래, 왜 번호를 못 눌러!”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팔십 노인네에게 면박을 줬다. 사실 알고 있다. 엄마는 팔십이 넘은 노인이다. 그런데도 내 머리 속 엄마는 내 어릴 적 기억속의 ‘그냥 엄마’인 것이었다. 현관문을 여는 법을 몇 번이고 엄마에게 확인한 후에 나는 어리석은 자신을 깊이 원망하는 밤을 보냈다. 엄마는 이후로도 더러 손녀에게 주겠노라 가방에 담아온 떡과 오렌지주스가 든 가방을 못 찾았다. 당신이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집에 오는 사이 잊은 거였다.
김똑같이고 싶은 욕심, 그렇다. 나는 ‘똑같은 삶’을 바란다. 나는 여전히 엄마 앞에선 어리광을 피우고, 잔소리를 해대는 딸이길 바란다. 세상의 모든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시간의 힘. 그 힘이 주는 삶의 변화를 어린아이처럼 거부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어찌 지내냐는 인사말을 던졌을 때 머리를 긁적이며 “저야 뭐, 똑같아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조문을 다녀오며 나는 또 다시 한 번 나의 삶이 어제와, 엊그제와, 똑같기를 기원한다. 어리석은 천둥벌거숭이의 삶이라도 당분간이라도 좋으니 ‘김똑같’이라면 좋겠다.
김현예 기자 👉 중앙일보 기자. 최근에는 사회부로 옮겨 코로나 19 관련 취재를 도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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