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와 날다람쥐의 동거
- 퐁당 에디터
- 2021년 9월 24일
- 3분 분량
나는 나무늘보다. 생각도 많은데 느리기까지 하다. 그러니 매사 느림보다. 다 함께 밥을 먹으면 제일 마지막에 숟가락을 놓는 사람이다. 음식 하나하나 음미하느라 그러는 게 아니라 그저 속도가 느리다. 어릴 적 엄마한테 늘 듣는 소리는 ‘한쪽으로 빨리빨리 씹고 삼켜’였고, 기다리다 폭발한 엄마가 다 먹지도 못한 밥을 빼앗은 적도 있다. 움직임이 느린 건 말할 것도 없다. 남들 10분이면 걸어가는 길을 빠른 걸음 걸어야 '간신히' 15분 만에 도착한다. 학교도 오래 다녀 사회생활 시작도 늦었다. 늦은 만큼 빠릿빠릿하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일하는 속도도 느리다. 아버지는 나를 보며 늘 ‘짤짤맨다’라고 했다. 이렇게 느려터져서 어떻게 먹고 사나 싶지만, 나무늘보도 어쨌건 간에 생존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엄마는 날다람쥐다. 남들 10분이면 걸어가는 길을 '여유롭게' 7분이면 도착한다. 마음먹고 속도를 높이면 5분 주파도 문제없다. 손도 빠르다. 아버지와 엄마는 아버지 친구들 부부동반 여행에서 자두 농장에 갔었는데, 제한된 시간 안에 자두를 마음껏 따서 가져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우리 엄마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당시 그 현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두 하나에 양손을 사용하는데 너희 엄마는 한 손에 자두 두개, 그렇게 양손으로 자두를 따. 그 와중에 몇 개는 이미 입에 들어갔어.” 이런 엄마 덕분에 다른 집보다 못해도 두 배는 많은 양의 자두를 모을 수 있었고 몇 날 며칠을 신나게 먹었다. 제사·명절 차례상의 많은 음식도 혼자 순식간에 해치운다. 살림 잘하는 사람은 주변을 정리하면서 요리를 한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우리 엄마다. 아버지 말씀을 빌리자면 엄마는 '눈치도 빠르고 행동도 빨라 절간에서도 새우젓 찾아 먹을 사람'이다.

이런 엄마의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 핀잔도 많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지만 그런 굼뜬 모습이 답답해 말이 곱게 나가지 않은 것이다. 그 말에 어린 나는 더 주눅 들고, 더 답답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전복되는 상황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엄마는 나이를 먹으면서 민첩했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고, 나는 회사 생활로 10년 구르면서 예전보다 조금, 아주 조금 빨라졌다(예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지 여전히 ‘빠른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그거 조금 빨라졌다고 엄마의 굼뜬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고 꼭 한두 마디를 덧붙인다. 엄마는 별말 없이 내가 쏟아 내는 말을 듣기만 한다. 어릴 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와 함께 마트의 계산대에 도착하면 내 입에서는 ‘빨리빨리’가 속사포로 쏟아진다. “회원 바코드 미리 빨리빨리 준비해”, “내가 계산할 테니까 시장가방에 빨리빨리 넣어”, “뒤에 사람 있잖아. 이따 확인해도 되니까 이쪽으로 빨리 와” 등. 계산 담당직원의 빠른 손놀림으로 다음 차례 손님과 섞이는 게 번잡하거니와 앞에 있는 사람이 빨리 빠져줘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를 재촉하게 된다. 우선 급한 마음에 내가 시장가방에 계산한 물건을 쓸어 담고 있으면 “그렇게 넣으면 안 돼. 나도 내 방식이 있어! 너랑 못 다니겠어!”라며 참았던 마음을 빵 터뜨렸다. 어릴 적 함께 서점에 가서 하염없이 책을 고르는 나를 보며 빨리 고르라 채근하다 근처에 있는 책을 쥐여 주는 엄마에게 참다 참다 “나도 보고 싶은 게 있어!”라고 말하던 상황과 오버랩 되었다.(그러다 끝내 책을 고르지 못해 엄마를 열받게 하고 집에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제일 답답한 사람은 엄마이지 않을까 싶다. 나야 ‘본 투 비’ 나무늘보지만 엄마는 한평생을 날다람쥐로 살아왔다. 그랬던 사람이 자비 없는 세월의 힘에 의해 생각과 달리 따라주지 않는 느린 몸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서랍에 손을 찧는 경우도 많아졌고, 물건을 떨어뜨려 다리와 발에 상처가 생기는 날도 허다하다. 이럴 때마다 엄마는 자기 자신이 싫어지고 화가 난다고 한다. 그러다 옆에 있던 내게 괜히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며 퉁을 준다.
엄마가 느려진 몸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나도 달라진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겠구나 싶다. 그거 조금 젊다고 유세 부리지 말고. 엄마 한정의 조급증은 버리고, 엄마의 몸과 마음이 엇박자를 낼 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 말을 해야겠다.
지금보다 더 나무늘보였던 어린 내가 날다람쥐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괜찮아. 천천히 해.”
👉 우기. '욱'이 있는 나무늘보 사실 저도 제가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의지 없어요. 투지도 없어요. 열정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있을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없는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일단 태어났으니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주어지면 열심히 합니다. 결과는 보장 못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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