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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웃

지난해 말 이사를 했다. 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다. 사정상 쫓기듯 급히 해야만 했던 상황인지라, 돈에 맞는 집을 구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발을 동동 굴러가며 어렵사리 구한 것이 지금의 이 집이다. 상가 위에 있는 작은 아파트 2층으로, 거실 베란다 창밖으론 각종 간판 풍경이 코앞에 펼쳐졌다. 문을 열면 일층 상가에 있는 고깃집에서 올라오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집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이 때문에 반년 가까이 집이 비어있던 것을 이사를 하고서야 알았다. 각설하고, 새로 이사 온 이 집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다. 우리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한집씩 있다. 전에 살던 곳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아담(아담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전에 살던 곳이 대궐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30평이 채 안 되는 아파트였다)하다. 거실엔 식탁을 놓으니 쇼파 둘 자리가 없고, 안방은 침대 매트리스를 두고 나니 옷장 문이 겨우 열린다. 안방 베란다엔 세탁기를 뒀는데, 안방 창을 타넘고 들어가 빨래를 돌리기도 한다. 그만큼 아담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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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전해지는 소리

이사 온 이후로 아이들이 달라졌다. 생일을 맞게 된 큰 아이 입에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생일 파티를 해보고 싶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일하는 엄마 탓에 한 번도 생일파티를 친구들과 해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는데, 결국 소원이던 생일날은 친구들과 밖에서 보냈다. 둘째는 TV에서 집을 구해주는 프로그램인 ‘구해줘 홈즈’만 나오면 “저런 집에 이사 가자”고 외쳐댔다. 베갯머리에선 아이들이 내 귀에 대고 “돈 많이 벌면 큰 집으로 이사 가자”고 말하는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잔소리 폭격을 했다. 야, 이 녀석들아. 이 정도면 남부럽지 않은 대한민국 중산층이다. 너희들이 물정 몰라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다. 등 따시고 배부르니 하는 소리다.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줄은 아냐. 나는 이 집이 좋은데, 너희들은 싫으냐. 엄마는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고 싶다,를 따따따 귀에 들이부었다.


그러다 최근 처음으로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출퇴근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사람들을 마주치지 못했는데, ‘소리’로 이웃들의 삶의 흔적을 알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기자실이 폐쇄되고 재택근무를 하던 3월 어느 날이었다. 거실 식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오른쪽 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음악을 크게 틀었거니 했지만, 간간이 연주가 중간에 끊겼다. 누군가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귀를 기울였다. 제법 아름다웠다.


그리고 또 얼마 뒤. 재택근무를 하던 일요일 오전. 오른쪽 집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였다. 가사에 ‘주의 은혜 놀라워라’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는 찬송가였다. 코로나19 때문에 예배가 모두 온라인 예배로 바뀌니 집에서 유튜브를 틀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원치 않은 예배 생중계는 오래된 아파트의 ‘얇은 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옆집 아저씨의 찬송가는 주말마다 울려퍼졌다.


왼쪽집에 대해 ‘감정’을 갖게 된 건 또 다른 일 때문이었다. 코로나19로 아이들은 등굣길이 막혔다. 집에서 낮밤을 바꿔 살던 아이들은 ‘온라인 개학’을 했다. (세상에 개학을 온라인으로 하다니. 온라인 개학을 하던 날, 큰 아이 개학을 ‘시켜주려’ 컴퓨터를 켠 나는 교장선생님의 ‘안녕하세요 어린이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개학인사도 함께 들었다) 온라인 수업을 그야말로 다채로웠다.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는가. 온라인으로 하는 체육수업이라니.


문제는 큰 아이의 음악수업이었다. 리코더 수업을 듣던 아이가 거실로 인상을 쓰며 뛰어나왔다. ‘높은 미’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사를 쓰다말고 “야, 이 녀석아, 미가 왜 안 되냐. 구멍을 잘 막아봐라. 음악 교과서를 가져와라. 다 책에 있다. 엄마 봐라, 이게 왜 안 돼냐”로 이어지는 잔소리 폭탄을 해댔다. 리코더와 음악교과서를 손에 들려 아이를 방으로 돌려보내고 매우 ‘격한’ 파열음을 들었다. 속으로 저걸 어쩌지 싶었다. 수행평가를 한다는데. 손가락으로 하는 악기연주엔 도통 재능이 없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는 생각이 스쳐가던 찰나. 왼쪽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리코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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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정말 간사한 동물인걸까.(사실 나만 간사한 동물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웃집에서 들리는 리코더 소리에 웃음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저 집도 아이가 집에서 음악수업을 듣고 있구나’란 생각이 주는 안도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예상치 못한 소리로 위로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웃들이 내는 삶의 소리들, 그 소리들은 코로나19로 집에 갇혀 지내던 내게 큰 에너지가 됐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존재들에게서 받는 동질감. 살아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들이 주는 위로감은 상당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바이러스를 피해,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은 당신만이 아니라고, 우리 모두 이겨내 보려 애를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단어가 사라지면서 이웃집에서 나는 ‘소리’는 점차 듣지 못하는 것들이 됐다. 나는 다시 출근을 시작했고, 아이들 역시 주 1회에 불과하지만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이웃집 아저씨는 주말에 더 이상 집에서 찬송가를 부르지 않는다. 아, 어쩌면, 그 소리들이 언젠가 그리워질 것만 같다. 첨언하자면, 지난 주말에 계단에서 오른쪽 집 이웃집 남학생을 마주쳤다. 운동을 하러 나가는지 운동복 차림에 이어폰을 하고 있었다. 이 친구가 피아노를 그리도 잘 쳤구나 싶은 마음에 인사를 해볼까도 했지만 차마 (부끄러워) 그러질 못했다. (속으로 이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 아들을 둔 이웃집 아주머니는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 왼쪽 집 할머니와는 종종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할머니는 아파트 페인트칠을 하니 복도에 내둔 아이들 킥보드를 안으로 들여놓으라는 ‘정보’를 주기도 하고, ‘퇴근하고 들어오냐’는 살뜰한 인사도 해주셨다. 참, 살만한 곳이다.

칼럼니스트 김똑같 👉 본명은 김현예. 중앙일보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을 하고 있다. 은퇴하면 뭐하고 살까 걱정하는 게 요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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