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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차례입니다

요즘 일본 드라마는 ‘도라마코리아’라는 플랫폼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서 방영하는 드라마가 제휴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유료 VOD도 있고, 광고를 보면 무료 드라마 시청이 가능하다. 요즘 한국에서는 일본 영화, 드라마가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챙겨 보기가 쉽지 않다. 케이블 방송에서도 방영이 많지 않고, 다른 경로로 구하기도 힘들다. 그런 이유로 ‘도라마코리아’의 등장은 무척 반가웠다.


2분기에 시작한 <당신 차례입니다>도 도라마코리아로 보기 시작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연루된 교환살인이라는 소재에 끌렸다. 테즈카 부부가 이사를 한 곳은 약 30세대 정도가 살고 있는 맨션. 주민회에 나갔다가 이상한 게임에 휘말린다. 누구나 죽이고 싶은 사람 하나쯤은 있는 것 아니냐며, 교환살인을 하면 잡힐 가능성이 없다는 말에 다들 한번 이름을 적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한 장씩 나눠 갖는다. 농담처럼 게임은 끝났지만, 종이에 이름이 적힌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가면서 상황이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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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죽이고 싶은 사람은 아마 있을 것이다.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보기에는 절친한 친구일 수도 있고, 피를 나눈 가족일 수도 있다. 시끄러운 소음이 연일 이어지는 이웃집 청년일 수도 있고, 학교에서 나를 괴롭히는 동급생일 수도 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누군가 먼저 타면서 어깨를 확 밀치는 순간 정체 모를 살의가 일기도 한다. 마음 깊이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일이다.


<당신 차례입니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여성이 15살 연상이며 추리소설 마니아인 부부. 휠체어 신세지만 며느리를 괴롭히는 것으로 즐거움을 얻는 할머니, 방송출연을 하며 잘나가는 동창생을 질투하는 의사, 워커홀릭 싱글맘, 중국에서 온 대학생, 블랙 컨슈머에 스토커인 젊은 여성 등등.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다양한 그들의 캐릭터를 보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겹쳐진다. 과장되어 있음은 분명하지만 분명히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대부분은 이후의 추락을 두려워하기에 실행하지 못한다. 역으로 말한다면, 안전이 보장되면 인간은 누군가를 생각보다는 쉽게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닐까? 애초에 다른 인간을 죽일 수 없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중고등학교 시절,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화풀이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숨 막히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방법의 하나였다. 망상에서도 전제는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동기가 없으려면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야 한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라면 가능할까? 그런데 나의 개인적인 갈등을 전혀 모르는 이에게 극단의 방식으로 투사하는 것으로 내 마음이 과연 해소가 될 수 있을까? 계속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에 가서 더욱 영화에 빠져들면서, 망상은 줄어들었다. 이후로 서서히 사라졌다. 날마다 다방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고, 집에 가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는 것으로 해소가 되었다. 현실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겠다는 생각은 희미해졌다. 가끔은 궁금하다. 절대로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다면, 지금 나는 망상을 실행할 수 있을지.


<당신 차례입니다>에서 흥미로운 부분 하나는, 평범한 사람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을 때의 마음과 행동이었다. 그들은 과연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은 살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학설도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잠재적 살인자인 것일까?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내 곁의 친절한 이웃도 기꺼이 살인자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말하는 ‘정상’은 대체 무엇일까? 살인자는 정상이 아니라거나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만 끔찍한 범죄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글. 문화평론가 김봉석

👉 브뤼트, 에이코믹스 전 편집장, 부천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 문화 평론가,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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