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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악몽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이 두려운 내 사랑은 더는 말라리아 약을 먹지 않는다. 말라리아 역시 코로나19처럼 아직 백신이 없다. 치료제가 곧 예방약인 셈인데, 그 약의 부작용 중 하나가 악몽이란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과 말라리아에 걸릴 수도 있는 위험 중 그는 후자를 택했다.


그의 악몽은 군대라고 했다. 군대에 다시 가는 것인지, 군대 시절인지, 복무 중 갑자기 휴가를 나와야 했던 날인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군대라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한국 남성 대다수가 겪는 일, 여전히 겪고 있고 불행하게도 앞으로도 누군가는 겪게 될 일. 그의 악몽의 트리거는 말라리아 약이다.


내 악몽도 한국 여성 대다수가 겪는 일, 여전히 겪고 있고 미칠 것 같게도 앞으로도 겪게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악몽의 트리거는 뉴스와 SNS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쉼 없이 당겨진다. 7월에는 매주 당겨지고 있다. 며칠 뉴스도 안 보고 SNS도 열지 않았는데, 글쓰기 모임의 단톡에서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흔해 빠진 악몽이어서 나 말고도 잠 못 이루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열대야도 아닌 선선한 7월의 밤에 집단 불면이라니.


내 악몽의 정체는 추행당하는 것이다. 군대, 두 글자에 내가 그랬듯 추행, 두 글자에 그도 더는 묻지 않았다. 세세한 정황을 물으려 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한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한두 명이었어야 말이지. 상처는 말을 해야 치유가 된다지만, 말을 할수록 딱지가 뜯기는 상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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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려 8차선 도로로 뛰어들었는데도 왜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느냐 했고, 몸에 난 상처도 없고 직장인이 아니어서 도와줄 수 없다 했다. 이러다 진짜 미치지 싶어 일을 접자 무책임한 인간이 되었다. 용기를 내어 사과를 요구했더니 ‘네가 언제 만취해서 풀어지는 지 5년이고 10년이고 쫓아다니며 지켜보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쪼그라들고 숨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포기할 즈음, 선배에게 여성의 전화를 소개받았고, 독촉에 못 이겨 상담하러 갔고, 간사님의 지원에 겨우겨우 고소를 했다. 하필 그 경찰서는 그 일이 있었던 곳 지척이었고, 하필 그날 여성 경찰이 없었다. 소파 끄트머리에 15분쯤 혼자 앉아 기다린 끝에 러닝셔츠 바람의 강력반 형사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형사는 오늘이 사건 발생 6개월에서 이틀 전인데 하필 금요일 오후라며, 이제야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성범죄 고소기간이 6개월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계속 진부하게 흐른다. 사과는커녕 내 임금조차 주지 않던 가해자는 형사를 통해 거듭 통화를 요청하더니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니 미안해, 그렇지만 다 네 오해야, 그러니 고소를 취하해주렴’이라 했고, 그의 동생은 임금을 줄 테니 고소를 취하하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약식기소되어 벌금형을 받았고, 여성의 전화 선생님들은 판결에 분노하였으며, 엄마의 우려대로 나는 꽃뱀이 되었다. 함께 일했던 이들은 그에게 벌금형을 내리고 임금을 요구한 나를 돈에 환장한 꽃뱀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그의 친구이자 내가 친해지고 싶었던 언니가 그의 진심 어린 사과라며 한지 뭉치를 건넸고, 그의 벌금은 친구들이 십시일반 추렴했으니 알고 있으라 전했다. 그의 아내는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도 자신의 가족에게 사과하지 않는 뻔뻔한 내게 메일을 보냈다. 그녀는 호주에서 온 영어 강사였는데, 장문의 영어 메일에는 핵심 문장들이 빨간색 볼드체로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손도 대기 싫었던 한지 뭉치의 정체는 여성의 전화에서 확인해주었다. 개발새발인 붓글씨를 타이핑하고 사진을 찍어 내게 원본과 함께 건네며 당부했다. 부디, 꼭, 가지고 있으라고. 절대 버리면 안 된다고. 혹시 모르니까 말이다. 말 잘 듣는 나는 그것을 TV장 뒤로 던져버렸고 몇 년 뒤 이사를 하며 먼지를 뒤집어쓴 그것을 버려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참이 지나 ‘미투’라는 단어가 나올 즈음 그는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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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전화 선생님들과 변호사님과 몇몇 선배의 도움을 받아 최소한의 법적인 도움과 형식적인 사과를 경험한 나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더 빨리 말해야지, 떨려도 더 크게 말해야지 다짐하고 되새겼다. 그리고 배운 대로 했다. 하지만 배움은 오래 가지 못했다. 폭력에 대응하는 중화항체 같은 건 형성되지 않는 걸까? 혹은, 가까스로 만들어진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 걸까?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그 순간에 내가 왜 가만히 있었는지, 왜 얼었는지. 나도 배운 사람인데. 정말이지 몸소 배웠는데. 일을, 동료들을, 일상을 지키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시끄러운 시간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방법은 진짜 없었던 걸까. 가만히 있었던 내게 부아가 치미는 날이면 꿈을 꾼다. 꿈속에서도 나는 얼어붙는다. 가까스로 말을 해도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거나, 내 말을 귀담아들은 이들이 나를 꽃뱀으로 몰아세운다. 그래서 꿈속에서도 분노와 수치심에 잠 못 이루고, 억울함을 풀 수 없어 속을 끓인다. 그러는 사이 가해자는 시시때때로 얼굴을 바꾼다. 그 인간에서 저 인간으로, 그 새끼에서 개새끼로. 그러다 내 사랑의 얼굴이 되고 내 아빠의 얼굴이 된다. 진짜 악몽은 이런 거다. 계속 이럴 수는 없어서 책을 든다. <김지은입니다>를 읽어보기로 한다. 나를 일으킨 것은 가해의 순간을 두고 잘잘못을 따지거나 덮어놓고 위로하려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 이후의 내 시간과 마음을 헤아리려 했던 이들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이가 되고 싶으면서도 지금 악몽 속에 있는 이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한다. 그래서 록산 게이의 책을 읽기까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고, <김지은입니다>는 나 말고 다른 이들이 많이 읽는 것으로 충분하길 바랐다. 바람이 바람으로 그치기엔 이제 고작 절반이 지난 7월이 너무나 길다. 그래서 책을 읽기로 한다. 당신의 악몽 속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다면, 그들 말고 우리도 있어 당신이 덜 얼어붙을 수 있다면, 그렇게 악몽의 농도를 희석할 수 있다면, 악몽을 꾸어야 할 새로운 이의 숫자가 언젠가는 줄어들지도 모를 테니.

에디터 이명제 👉 콘텐츠를 만든다. 디지털, 출판을 오가며 에디터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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