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바람 속에서도 난 눈을 뜨고*
- 퐁당 에디터
- 2020년 5월 8일
- 2분 분량
2002년 9월 10일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팻 매스니* 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늘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계십니다.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기발한 질문이다. 스티븐 킹이라면 고집하는 줄무늬 연필이 있을지도 모르지. 팻은 미소를 지을 때 치아가 살짝 드러나 보인다. 그는 무대에서 연주할 때 관객들이 자신의 의상보다는 음악에 더 편히 집중할 수 있도록 늘 같은 옷을 입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입고 계신 줄무늬 티셔츠는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그냥 줄무늬 티셔츠일 뿐이랍니다. 팻은 함박웃음과 함께 말했다.

2020년 2월 21일에 팻 메스니는 아홉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스튜디오 솔로 앨범으로는 7년 만인데, 그 말은 라이브 솔로 앨범은 있었고 그외 그룹 앨범과 콜래버레이션 앨범 등… 공연은 한 해에 100번도 넘게 한다. 아무튼 솔로 앨범 ‘From This Place’는 그에게 생애 최초의 빌보드 톱 10 기록을 가져다 주었다.
팻 메스니는 1954년, 정비석이 ‘자유부인’을 연재하던 해에 태어났다. 소설 속 대학교수의 아내인 주인공이 댄스홀에서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때문에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때다. 팻은 어릴 때 트럼페터였던 외할아버지와 아마추어 재즈 뮤지션인 아버지의 2중주를 듣곤 했고, 또한 음악에 재능을 보인 열두세 살 시절 형의 가세로 가족음악회는 곧 3중주로 풍성해졌다. 그 정도로 음악적 분위기였지만 아버지는 팻을 옷장에 가두고, 아니 팻의 기타를 옷장에 가두고 3개월간 연주 금지령을 내린 적이 있다. 중학교에서 낙제생이 된 팻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타를 잡지 않겠습니다, 약속해야만 했다. “그래도 여러모로 소득이 있었습니다.” 첫째 팻은 악기를 머릿속에 그려 놓고 연습을 이어 나갔다. 둘째 부모님도 팻 자신도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팻은 스무살이 되기 전에 버클리 음대에서 기타를 가르치게 되었고 스물두 살에 데뷔 앨범 ‘Bright Size Life’(1976)를 발표했다.


'From This Place’를 발표하던 날 팻 메스니는 공식 웹사이트에 긴 글을 올렸다. “From This Place는 제 평생에 만들어 보고 싶었던 레코드였습니다.” 그는 아주 커다란 캔버스 위에 수 백 밤을 함께 연주한 뮤지션들과 음악적 완성, 정점, 총결산과 같은 걸 만들었다고 썼다. 그는 수 년 전부터 구상해 온 100여 곡을 버리기도 했고 밴드 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 녹음을 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편곡을 바꾸고 오케스트라를 포함시킨다는 결정은 아주 나중에 하게 되었다. 재즈 밴드가 녹음한 결과물 위에 오케스트라 편곡을 덧입히는 오버더빙이 ‘From This Place’의 방식이다.

‘From This Place’에는 ‘From This Place’라는 곡이 있다. 그는 글의 마지막에 이 곡에 대해 썼다. “2016년 11월 8일. 우리나라는 그동안 감춰져 있던 부끄러운 면을 세상에 드러내게 되었다. ‘From This Place’는 선거 결과가 비극적이게도 명백해진 다음날 이른 아침에 쓴 곡이다. (중략) 노래를 부른 미셸 은데게오첼로와 가사를 쓴 앨리슨 라일리는 그 비극적인 순간의 감정을 정확히 포착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확인해 주었다.” 1년은 음반 녹음에, 1년은 100회 이상 공연을 하는 주기로 음악을 합니다, 라고 팻 메스니는 2002년 기자회견장에서 말했다. 음반이 나왔으니 이제 공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3월에는 12회, 5월에는 18회의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팻 메스니와 그의 밴드는 3월 15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멈춰야 했다. 무엇을 하건 어떤 생각을 하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집어 삼키는 세상의 어느 한때를 지나가고 있다. ‘From This Place’를 아직 많이 들어보지 못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손꼽게 될 것 같다. 밴드가 미리 연주할 때 의도적으로 남겨 둔 빈 공간을 채우는 오케스트레이션은 영화적이다. 지적인 SF 영화. 내가 그동안 가장 자주 들은 음반은 ‘Jim Hall & Pat Metheny’다. 제목 그대로 기타리스트 짐 홀과 듀엣한 작품이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면역력이 강화될지도 모른다, 라고 글을 마무리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 델리스파이스 3집 '슬프지만 진실...' 수록곡 '거울 II'의 가사입니다. 드럼을 치다가 노래도 한 멤버 최재혁의 글/곡입니다. * 팻 메스니 (Patrick Bruce Metheny, 1954년 8월 12일 - )는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다.
에디터 조빔
👉 출판 편집자. 칼럼니스트. HB Press를 운영하고 있다. 정직하게 하루를 보내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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