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그렇게 오지 않는다
- 퐁당 에디터
- 2020년 1월 31일
- 2분 분량
그 작은 아이의 입에서 웜홀이란 말이 나오는 걸 들었을 때 나는 전구에 불이 켜지듯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전구가 나오자마자 세상이 전구를 반겨 맞았던 건 아니다. 그땐 가스등이 도시의 밤을 비춰 주던 19세기 말이었으니까.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 거리를 누비며 가로등을 켜고 끄던 등지기들과 도시 구석구석을 가스관으로 연결하느라 많은 돈을 쓴 회사들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을 것이다. 가스등을 쓰던 가정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냄새도 좀 나고 별로 밝지도 않은 가스등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어두워지면 불을 끄고 자는 것이 상식인 세상에선 말이다. 미국 백악관에 전등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감전을 걱정해 밤새 켜놓았다가 다음날 직원들이 출근해서야 소등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전등에 앞서 전화가 먼저 발명되었다. 발명가는 잘 알려져 있듯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어린이 위인전엔 벨이 경쟁 발명가 엘리샤 그레이보다 두 시간 먼저 특허를 신청해 극적으로 위대한 발명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으로 잘라 말하곤 한다. 거기서 자르지 않을 경우 이야기가 좀 복잡하고 엉성해져서일까. 우선 특허청에선 벨과 그레이에게 같은 날 특허 신청이 들어왔으니 어떻게 할 건지 당사자들의 의사를 물었다. 이에 그레이는 뭐 별것도 아닌데 자기가 특허 신청을 취소하겠다고 답한다. 둘 중 한 명이 취소하지 않으면 법정에서 다투게 되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좀 복잡하고 엉성해진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무튼 전기선을 이용해 멀리 있는 사람과 대화한다는 아이디어나 기술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발명가 역시 전신 기술을 개발하다가 부록처럼 전화 기술을 얻었고, 실제로 벨의 특허 신청서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 전신 기술들 열 몇 개에 이어 맨 뒤에 부록처럼 전화 기술이 붙어 있었다. 이미 세상은 따따따 따-따 따- 따따따로 충분히 소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이스트와 서울대학교 교수 두 분이 쓴 <미래는 오지 않는다>1)를 읽다가 이런 에피소드들을 만나고 나는 천지인 자판 특허 소송 사건을 떠올렸다. 20세기 말에 발생한 이 사건을 요약하면 “조관현 씨, 누가 휴대전화에서 문자 기능을 쓰겠어요.”(엘지전자), “세계화 시대엔 영어가 더 많이 쓰입니다.”(삼성전자)라며 천지인 자판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기업이 나중에 유사 기술로 핸드폰을 만들어 소송전이 벌어졌다. 삼성은 한 때 패소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조관현 씨와 삼성은 8년 만에 합의했다. 2)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예측하느니 만드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게 카카오톡을 만든 사람이 한국 최고 부자 아닌가. 어느 가을날 월드컵공원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앉아 김밥과 요구르트를 나눠 먹던 내 친구의 아들 이현승 군(만 8세, 초2)의 입에서 나온 웜홀이란 단어는, 밥을 잘 먹지 않고 떼 쓰기에만 재능이 있는 아이라는 다년간의 기억을 내 머릿속에서 거의 밀어내 버렸다. 지적인 사람에게 끌리는 편인 나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현승이는 자기 엄마와 내가 먹을 것을 사러 장을 보러 간 사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람 피러 갔나? 아내가 웃으며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러게 미래는 내 탓일 것이다.
1) 전치형, 홍성욱 지음 <미래는 오지 않는다> 문학과지성사
2) '삼성과 다툰 천지인, IT 기기 한글 입력 시스템 ' 신동아 2012년 4월 기사
에디터 조빔 👉 출판사 HB 프레스를 운영하고 있다. 정직하고 세심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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