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시바 아저씨

연애시절. 살갑던 아내가 어느 순간, 유격훈련장에서 만난 조교처럼 변해갔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내 앞에 서면 묘한 긴장감에 휩싸이고, 이유없이 눈치만 살피게 됐다. 만약 아내의 심기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다고 느껴지면,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물컵을 쏟았다. 완벽한 실수였다. ‘아차!’ 싶었다. 하필 그 모습을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리고 시작된 한바탕 구박의 대향연. 변명 한마디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물기를 박박 문질러 닦았다. 그마저도 걸레질 하나 제대로 못한다는 잔소리와 함께. 억울했다.

ree

그런데 그날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아내가 제법 비싸게 구매한, 옹기에 든 친환경 고추장을 바닥에 떨어트려 박살을 내버렸다. 한두번 밖에 쓰지 않은 거의 새것. 옹기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쩍하고 쪼개졌고, 뻘건 고추장은 사방으로 튀었다. 역습의 기회였다. 아내에게 조심 좀 하라고 한마디 하려는 찰나. 반전이 일어났다. 식사 준비로 바쁘니, 빨리 좀 치워보라는 신경질적인 한 마디. 어이가 없었다. 내가 하면 잘못이고, 자기가 하면 실수던가. 한마디로 적반하장. 그렇게 난 또 걸레질에 돌입했다. 역시 제대로 닦지 못한다는 잔소리와 함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이런 순간들은 늘어만 갔다. 더구나 아이가 클수록 아내는 더욱 예민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보니 가뜩이나 잠귀가 밝은 편인 아내는 작은 소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면부족에 늘 시달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불똥은 나에게 튀었다. 퇴근 후, 소주 일잔은 온종일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생활의 낙이 아니던가. 물론 육아에 치여 좋아하던 술을 멀리하고, 맞벌이로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여기서 문제 는 소주 한잔 걸치고 모두가 잠든 밤 귀가해, 샤워 꼭지를 돌릴 때마다 고요한 집 안에 울려 퍼 지는 물소리. 아내는 내게 한가지 미션을 던져 주었다. 샤워 할 때, 물소리를 내지 말 것.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하는 특수요원 에단 헌트에게도 불가능한 임무를 말이다. 소주 한잔으로 인한 문제는 더 있었다. 술만 마시면 허기에 시달리던 나는 꼭 라면 한봉지를 흡입해야만 잠이 오는 습관이 있는데, 덕분에 살이 덕지덕지 붙어 버렸고, 건강검진 결과 비만과 고도비만 사이, 어정쩡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그 여파로 코골이가 심해졌다고 한다. 물론 한번 잠들면 엎어가도 모르는 나로써는 잘 모르는 남의 얘기지만. 아내가 그랬다. 엄청나다고.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고. 그렇게 난 결국 거실로 쫓겨나고 말았다. 보통의 남자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고, 가정 내 실권을 아내에게 모두 빼앗기면서 ’시바견’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중년 샐러리맨들의 애환을 그린 일본 만화책 ‘시바 아저씨’. 왜 하필 ’개’냐고? 그건 작가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이제는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된 작가 자신의 모습이 ’개’와 같았기 때문이란다. 단 어떠한 비하도 없다는 점. 나 역시 가정 내 실권을 아내에게 모두 빼앗긴 중년의 샐러리맨이 된 지금.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귀를 쫑끗 세우고 늘 경계태세에 돌입해 있는 ‘개’를 닮아가는 듯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상황을 벗어날 뾰족한 방도는 없다. '굉장한 적을 만났다 아내다. 너 같은 적은 생전 처음이다'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말을 떠올릴 뿐. 그래도 가족이 있어 오늘도 난 힘을 낸다.

에디터 신동민 👉 언론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떠돌던 중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꽂혀 촬영지인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무작정 떠났다.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4년간 웃픈(?) 연애를 하고, 귀국해 결혼에 골인. 대책없이 101일 동안 13개 나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캐리어 대신 배낭메고 떠나, 두발로 만든 둘만의 신혼여행기 ‘신혼여행 배낭메고 100일가?”를 출간했다. 이후 여행 전문 작가와 에디터 일을 병행하고 있다.


ree

댓글


Studio
Function.

ⓒ 2017. function all right reserved.

  • Facebook
  • Instagra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