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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줍는 남자

스위스 베른주 인터라켄(Interlaken)은 ‘호수의 사이’라는 뜻이다. 비취색 툰(Thun) 호수와 브리엔츠(Brienz) 호수 사이 그리고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와 아이거, 묀히 등 일명 알프스의 3대 봉우리가 감싸고 있는 그런 곳이다. 여행기자로 일할 당시, 이곳을 찾은 이유는 스위스 최대 민속 축제인 운수푸넨 페스티벌(Unspunnen Festival)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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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스푸넨 페스티벌이 처음 열린 것은 1805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쥐라 지역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베른주에 속해 있었고, 이에 따라 18세기부터 분리운동이 펼쳐졌는데, 베른주는 갈등이 심해지자 지역 화합을 위해 운수푸넨 페스티벌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해마다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정치적인 문제와 세계대전으로 100년 가까이 중단되기도 하며, 내가 취재 갔을 2017년 당시 10회째를 맞이했다고.


루체른에서 증기기관차와 유람선을 타고 인터라켄 선착장에 내려 행사장으로 걸어가는데, 거리 곳곳에서 스위스 전통의상인 남성용 레더호젠(Lederhosen)과 여성용 드린딜(Drindil)을 입고 손을 흔들며 활짝 미소짓는 주민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진한 치즈향이 풍겨왔고, 스위스를 대표하는 알프혼(Alphorn)과 카우벨(Cowbell), 요들송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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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최대 무게만 무려 83.5kg에 달하는 거대한 돌을 들어 올린 다음 멀리 던지는 게임이다. 힘찬 기합 소리에 맞춰 딱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둥그런 돌을 도움닫기 후, 모래 위로 던지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한참을 멍하니 구경하다 옆에 전통의상을 입은 젊은 커플이 너무 예뻐 보이길래 은근 슬쩍 대화를 시도하며, 기사에 쓸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흔쾌히 응한 이들은 팔짱을 풀고 어깨동무 포즈를 취해주며 “여기까지 왔으니 인터라켄 로컬 맥주인 루겐 브로이에 숯불에 구운 소시지를 꼭 맛보라”고 추천해줬다.


마침 갈증도 났던 터라 행사장 한켠에 일렬로 들어선 노점에서 루겐 브로이 한병과 숯불 소시지를 사서 자리 잡고 앉았다. 마침 저쪽으로 이번 일정에 동행했던 중국에서 온 기자가 보였다. 아내와 딸이 스위스에 살고 있어 일년에 절반은 중국에서, 나머지 기간은 스위스에서 보낸다는 그. 우락부락한 외모 탓에 쉽게 친해지지 못했던 터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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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기자가 갑자기 허리를 숙이더니 땅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자신의 가방 속에 넣는 모습이 보였다. 예상 밖의 행동 하나에 그동안 갖고 있던 중국에 대한 안 좋았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사납게만 보이던 그 기자에 대한 편견까지 싹 바뀌어 버렸다.

이색적인 스위스 전통축제의 모습도 좋았지만 지금까지도 운수푸넨 페스티벌을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그 쓰레기를 주워 가방에 넣던 우락부락한 사내의 모습이다. 흔히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기도 하는데, 그 ‘나 하나’가 참 여러가지를 바꿔 놓기도 한다.


에디터 신동민 👉 요즘은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미디어를 운영하는 일을 한다. 여행 작가와 기자로 오랜 기간 일해왔다. 장마와 집콕으로 지루한 독자들을 위해 스위스 풍경을 담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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