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노래 아무나 챌린지
- 퐁당 에디터
- 2021년 6월 18일
- 4분 분량
밍기적거리며 간직하던 소망 중 하나는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고, 때문에 평생 3분짜리 음악에도 집중을 못해왔다. 부를 때조차 잡생각의 방해를 받으니 완곡을 하기도 힘들다. 사람들은 노래 못하는 게 뭐 어떠냐고 격려하지만, 노래가 강점이란 소리는 평생 들은 적 없으므로 연습하고 싶었다. 내가 꾸물대는 집돼지에서 흥취를 아는 카나리아로 거듭난다면 지금보다 백 배는 멋져질 것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소망이 진취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본격적 보컬 트레이닝엔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직접 출석하여 뭔가를 배우는 활동을 끝까지 완수한 적이 없다. 학원, 헬스, 모임, 스터디 전부 3회 컷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큰 과업이므로 수고스러운 외출 준비를 마치면 도어락을 열 때 쯤 이미 녹초였다.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가더라도 내가 자주 쓰는 말들이 나의 십분 후 과업을 파괴했다.
우리 그냥 오늘은 잼나게 놀면 안 돼?” “다음에 두 배로 열심히 하면 되잖아.” “하안-버언-마안! 제에-바알!” 나는 상대방의 망설임을 허물고자 애교스러워지기 때문에 우리는 곧 목적을 잊고 우하하 파티를 열게 된다. 사람들이 내 어리광을 받아주어서 뭔가를 못한다는 것은 완전히 저열한 변명이다. 그리고 변명은 내가 노래보다 잘 하는 +9,999가지 중 하나였다. 변명에 관한 한 나는 거의 신이니까 이번에는 배제하고, 변명 없이, 징징거릴 상대도 없이 혼자 노래 연습을 해 보기로 했다. 먼저 유튜브에 ‘바이브레이션’을 검색했다. 나의 동요적 창법에 물수제비 같은 떨림을 줄 수 있다면 실력이 한결 나아보일 것 같아서다. 온갖 좋아보이는 영상들이 떴는데 결과가 너무 많았다. 혼돈을 겪다가 ‘바이브레이션 여자’로 검색어를 강화했다. 존잘 여성분들의 보컬 강좌는 딱 2개 나오고, 그 밑으론 성인용품 바이브레이터를 야외에서 쓰는 여자친구들 영상이 이어졌다. 아마도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한심한 인간들이 찍은 것 같았다.

‘이게 다 뭐야 이씨, 망측하게시리!’ 내리다 보면 원하던 영상이 섞여있을까 했지만 괴물 진동팬티라는 것이 성인들의 세계를 덜덜거리게 한다는 쓸 데 없는 정보만 한 트럭이었다. 하지만 내가 떨고 싶은 건 성감대가 아니라 성대였다. 몇 번의 검색을 더한 끝에, 난잡해진 시야를 스탠딩에그 에그2호 선생님의 영상으로 정화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엔 이 영상이 가장 빠를 것 같아 (영상미도 좋다) 틀어놓고 연습을 시작했다. 에그2호 선생님이 말하길 배에 힘을 준 상태에서 “아! 아! 아!” 강세를 주며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바이브레이션이 될 거라 했다. 아주 쉬워 보였다. 그치만.
“아! 아! 아아아아아악!!!!!” 첫 번째 시도는 너무 거센 나머지 복통을 겪는 떼쟁이의 짜증 같았다. 이렇게 열 번만 질렀다간 옆집에서 대신 119를 불러줄 지 몰랐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두번째 시도는 힘이 너무 빠져서 굶어 죽어가는 늑대의 마지막 하울링처럼 들렸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바이브레이션도 완급 조절이 중요했다. '모든 일'들의 속성이 이러니 내가 '아무 일'도 안하는 상태에 하염없이 빠지게 되는 거였다. 사실 배에 힘을 준다는 감각 자체를 잘 몰랐다. 복근과 나는 오래전에 이별했고, 근미래엔 만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마시멜로 뱃살을 육포 상태로 만든다고 생각하니 힘이 들어가는 듯했다. 나는 우렁차게 뻗어나갔다.
"아! 아~ 아.. 호오옹(?)~." “아! 아! 아! 아!(삑)” “아으아으어어~” “우오아아아아악!” “(삑) (삑) (삑)” “(무음)” “(뻐끔뻐끔)” 소리는 점점 늘어지고 흉해지다 이윽고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영상을 잠시 멈추고 내 자신에게 진중하게 물었다. ‘너 할 생각이 있냐?’ 내 속의 내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나는 조수미 님이 절대 모르게 그 분의 수제자가 될 거야.’ 하지만 재개된 연습도 처참했다. 나는 에그2호 선생님의 가르침을 다 보기도 전에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게 되었다. 계속할수록 믿을 수 없을만치 삑사리가 많이 났다. 이것은 가창력의 문제라기 보단 '그냥'의 문제 같았다. '그냥'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처럼 '그냥' 못하는 애들이 있고, 총합으로 낸 지구의 평균이 결국 제로가 되는 시스템인가 싶었다. “우하하하하! 핫핫하하하하! 하...하...하.......”
웃느라 배의 힘을 다 쓰고 나자 이내 침울해졌다. 내가 가수의 꿈을 핥아볼 수조차 없을 만큼 재능이 없는 것이 차라리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글에는 어줍잖은 재능이 있어 작가이지도 못하고 작가를 포기하지도 못한 채 오래 고통받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은 작가여서 연습 에피소드를 글로 적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유튜버라면 영상으로 찍어야 할 텐데 상상만 해도 수치스러웠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음악하는 사람을 사귄 적 있었다. 그는 기타를 끝내주게 잘 쳤고 나는 아니었다. 내가 손가락을 움직여 쳐본 거라곤 컴퓨터 자판이 다였다. 그래도 우리가 사귄다고 하면 음악 세계가 나를 덥석 포용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철저히 배척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기타를 가르쳐주려고 했다. 공통 관심사가 거의 없었으니 내가 기타를 배우면 오순도순 할 얘기가 참 많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교습 과정은 15분 만에 사랑의 심판대가 되었고, 30분을 넘길 쯔음에는 사랑의 단두대가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타를 잡은 내 손가락이 손모아장갑처럼 꼭 붙어 떨어질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니.” “그럼 이렇게?” “아니, 그 반대.” “이제 알겠다! 이렇게?”
“아니아니, 그 쪽 말고......!” “아잇쒸........”
“자기야. 제발 화내지 말고 들어줘, 자기는 기타에 재능이 하나도 없어. 내가 본 그 누구보다.......”
“알았어. 이제 기타를 보내줄래......”
사랑했던 기타리스트는 내 목소리에 코멘트를 주기도 했다. 노래는 본인도 못하지만 내 목소리 자체가 멀리 뻗어나가는 소리가 아니라고 했다. 무슨무슨 학적으로 소리의 파동이 어쩌구...... 큰 소리가 꼭 멀리 가는 소리는 아니지만 자기의 목소리는 크지도 않고 멀리 가지도 않고 어쩌구...... 나는 타격없는 척 하다가 혼자가 되었을 때 조금 울었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을 씩씩하게 납득하기엔 춤도 너무 못 춰서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부모님은 나의 허접한 가무 실력이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나도 못하고, 너도 못하고, 너희 아빠도 큰아빠도 작은 아빠도 못하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너희 사촌오빠도 못한단다.”
사실이었다. 언젠가 명절 흥에 취해 몰려 간 노래방에서 실로 충격적인 그의 노래를 들어본 적 있었다. 오빠가 심한 장난을 치는 줄 알았으나 그는 본 중 가장 진지하였다. 그의 노래는 불순한 세력이 끼어든 주식 그래프처럼 알 수 없는 폭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때로는 올라가기만 하다 내려오지 않았고 때로는 한없이 낮아지며 자신의 최저점을 자체로 갱신했다. 사촌오빠는 나보고 노래를 잘한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지’와 비교한 것이므로 실은 욕이었다.
지금은 노래에 대한 불가능한 욕망을 접었다. 에그2호 선생님의 가르침은 복근 소환용 명령어로 유용하다. “아! 아! 아!” 라고 해보면, 둡실한 살집 속에 숨은 복근이 수줍게라도 응답을 주기 때문이다. 조수미 선생님의 수제자를 노렸다는 사실이 영원히 비밀일 수 있다는 것도 다행이다. 하마터면 세계 소프라노계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위협하는 작가가 될 뻔했다.
에세이스트 정지음
👉 92년생 에세이스트로 젊지만 일에 지친 청년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ADHD의 슬픔> 출간을 앞두고 있다. <언 럭키 스타트업> (2022)도 출간 예정이다.
너무 싫은 것들을 너무 사랑하려고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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