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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메모

찌르,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열한살, 여덟살 두 딸아이는 연신 이불을 걷어찬다.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인 것일까. 새벽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읽던 책을 황급히 덮고 노트북을 펼친 건, 순전히 풀벌레 소리 때문이다. 아, 써야겠다. ‘벌레 소리가 들린다’고. ‘가을이 이제 오려는가보다’고, 말이다.


사실 지난번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를 지배하고 있던 삶의 무게와 고통을 부지의 독자들에게 전달한 것만 같았다. 한참을 생각하고 결심했다. 앞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쓰지 말아야겠다고. 그런데 다시 나는 아버지로 돌아왔다. 또 다시 우울함을 전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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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주 전인가, 아버지의 낡은 휴대폰을 바꿔드렸다. 신형 스마트폰이라 좋아하시리라 기대하면서. 퇴근해 아버지 댁에 들렀다. “휴대폰은 마음에 드세요?” 쇼파에 걸터앉아 아버지의 새폰을 집어들었다. 친절한 휴대폰 가게 사장님은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분이었다. 아버지에게도 이런 저런 선물과 더불어 사용법 교습까지 귀찮은 내색 한번 없이 해주셨다. 사장님은 휴대폰 커버조차도 좋은 것으로 해주신 모양이었다. 은은한 파란빛이 도는, 한눈에 봐도 그냥 ‘공짜’ 같지 않은 커버였다.


커버를 만져보다 뒷부분에 종이가 삐죽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잡아 빼보니 이면지를 작게 오린 종이었다. 정갈한 아버지의 글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종이를 집어들었다. 울컥, 뜨거운 울음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종이에는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와 아버지의 전화번호, 엄마의 전화번호와 내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다섯줄의 숫자들이 적힌 종이 끝단엔 ‘연락 010-xxxx-xxxx'가 쓰여있다. 내 번호다.


차마 아버지 앞에서 울 수가 없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울었다. 이 뜨거운 눈물의 의미는 뭘까. 팔순의 아버지에게 이제는 내가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뒤늦은 깨달음 때문일까. 아니면 내 인생도 건사 못해 엎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잘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겠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눈물인 것일까.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울었는지를. 다만 한 가지는 알 것만 같다. 아버지의 메모지를 본 이후로, 나는 조금 덜 어리석은 인간으로 한발짝 나아간 것만 같다. 지금도 여전히 어리석은 인간이지만. 직업이 생긴 이후로 나는 늘 같은 폼으로 지내왔다. 지하철을 타고 일터에 가고, 사람을 만나고, 노트북을 켜는 일을 반복하면서 살아오는 데에만 급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인생은 정리 못한 서랍처럼 뒤죽박죽 엉켜 있었다.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아니 조금 알고 싶어졌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내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 것인지, 주어진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렴풋이 이것이 내가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도 말이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시오’란 댓글이 달릴 것만 같지만, 용기를 내어 적어본다.

“이제사 제가 깨닫고 있는 것들을 이미 알고 계시다면, 여러분들은 진일보한 인간입니다. 적어도 최소한 김현예 보다 나은 사람이고요. 저는 이제, 배워가고 있습니다.”

김현예 기자

👉 얼마전 휴직을 끝내고 다시 중앙일보로 복귀해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 다음 주에는 에디터 양열매 님의 이야기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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