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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지독한 불치병에 걸렸다. 이 불치병을 고쳐 보기 위해 20대 후반 호주로 향했다. 세계 3대 미항으 로 꼽히는 시드니 시내에서 페리를 타고 30분 거리. 맨리(Manly)라는 휴양도시에서 치료를 시작 하기로 했다. 홈스테이 주인장은 매서운 첫인상과 달리 상냥했다. 호주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주인장은 통장 개설을 도와주겠다며 맨리 시내로 나를 데려갔다. 덕분에 휴대폰 장만까지 일사천리. 마치 어미새 같던 주인장은 아무래도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날 강하게 키우고 싶으셨는지, 돌연 시내 구경이나 좀 하고 돌아오라며 나를 버려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당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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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는데, 이 와중에 배가 고팠다. 홀로 식당에 들어갈 용기는 안 나고, 주변을 배회하다 보니 마침 햄버거 가게가 보였다. 그래. 저 정도는 시켜 먹을 수 있겠지. 북적거 리는 가게로 들어가 줄을 섰는데, 점점 내 차례가 가까워 질수록 속이 울렁거렸다. 하필 이때 불치병이 도진 걸까?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드디어 내 차례. 마주한 거구의 스태프가 호통치듯 분명 뭐라뭐라 하는데. 단 한마디도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말없이 손가락으로 눈에 보이는 아무 햄버거나 가리켰다. 그때 귓가를 스치는 한마디. “Meal?” 그렇다. Meal. ‘끼니 때 먹는 음식을 가리키는 식사’라는 사전적 정의. 마침내 알아 듣는 단어가 등장했다. 당당히 말했다. 난 햄버거만 필요했을 뿐, 식사는 사양하니. “Nope!” 그렇게 난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햄버거 하나만 달랑 든 종이봉투를 받게 됐다. 훗날 알고 보니 ‘Meal’은 우리나라로 치면 ‘Set’의 개념이었다고. 기분도 울적하고, 마땅히 앉아서 먹을 자리도 보이지 않아 그냥 밖으로 나왔다. 슈퍼마켓에 가서 음료수라도 사고 싶었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그대로 맞으며 맨리 시내 근처에 있는 해변가로 걸어갔다. 마침 간이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가장 전망 좋은 자리를 골라 앉았다. 이 날씨에. 검정색 바디슈트를 입고, 파도를 벗삼아 윈드서핑을 만끽하는 이들이 보였다. 아! 이곳이 바로 호주구나. 불치병을 반드시 치료하고 귀국하자 다시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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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에 햄버거가 젖지 않게 조신히 꺼내 들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한입 더. 목이 메었다. 그 순간.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유난히 뾰족해 보이는 노란 부리를 가진 갈매기 무리가, 얼핏 보아도 50여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친 날개짓과 함께 햄버거를 향해 돌진하며 나를 포위하듯 둘러쌌다. 경험하지 못했으면 절대 모를 소름 그 자체였다. 난 비명을 지르며 햄버거를 버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4년 가까운 시간을 호주에서 더 보냈다. 하지만 결국 고치지 못했다.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한 걸까? 요즘 보면 오히려 병세가 더 악화된 것 같다. 영어 울렁증. 누가 그랬나. “야! 너두 할 수 있다”고. 영어든, 인생이든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에디터 신동민 👉언론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떠돌던 중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꽂혀 촬영지인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무작정 떠났다.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4년간 웃픈(?) 연애를 하고, 귀국해 결혼에 골인. 대책없이 101일 동안 13개 나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캐리어 대신 배낭메고 떠나, 두발로 만든 둘만의 신혼여행기 ‘신혼여행 배낭메고 100일 가?”를 출간했다. 이후 여행 전문기자로 10년쯤 활동하다 현재 에디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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