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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가봤니? 아웃도어 디자인 월드

점심 때부터 끝도 없이 걷다가 저녁 무렵 텐트에서 맥북을 켰다. 전북 진안에 있는 고원길에서 맞이하는 불금. 땀에 절어 있는 몸을 대충 닦고 월요일 발행할 온라인 콘텐츠(**디스플레이)를 수정하느라 작업 창을 열었다. 먹먹하다고 할 만큼 조용한 숲속에서 딸깍딸깍 마우스질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색다르다. 잠을 깨우기 위한 커피 대신 피톤치드를 ‘드링킹’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해야 하다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어째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떤 날은 강릉 금진 해변 바다를 눈앞에 두고, 한 땀 한 땀 누끼를 따다 말고(**앤유 프리미엄) 틈틈이 서핑을 했다. 지난봄에는 후쿠오카 거리를 걷다가 어느 카페에 들어가 무려 30분에 걸쳐 인쇄 송고 파일을 다운받아서 수정 작업(**프레스)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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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산과 나무, 흙과 바다를 찾아 무작정 걷는 일에 빠지면서 자초한 해프닝이다. 요즘은 그래서 미리 작업량을 조절해서 밖에서 해도 괜찮을 정도는 챙겨서 여정에 나선다. 나는 이렇게 밖에 나와서 하는 작업들을 언젠가부터 내 마음대로 ‘아웃도어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산속 텐트에서, 바닷가 파라솔 밑에서, 기차에서, 고속도로에서, 일본의 카페, 김포 공항에서 ‘아웃도어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이게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돌아오면 일도 한결 수월하다.


산으로, 숲으로 다니면서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점도 많다. 나는 스스로를 도시의 다양한 문화나 트렌드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고 여겼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위압적이고 높은 건물, 끊임없는 소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시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달라지고, 몸 상태도 한결 나아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새삼 놀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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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본의 북알프스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하산하면서부터 다시 올라가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쉽지 않은 산행이었는데, 폭우를 만나고, 바람을 맞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햇볕에 몸을 말렸다. 마음을 세탁해 탁탁 털어서 햇볕에 말린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풍광, 스케일의 차이가 주는 감동, 낯설고 맑은 공기, 더 높고 산뜻한 하늘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몰려드는 기분. 내가 산을 찾은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찾아오는 듯한 느낌은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 산이든, 디자인이든 원래 가장 좋은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 아주 설명하기 쉬운 것도 있다. 북한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어김없이 진동하는 막걸리 냄새, 음식 냄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쿵짝쿵짝 네 박자 노랫소리. 내가 지금 산을 오르는 것인지, 회갑 잔치에 초대받은 것인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다. 그러지 맙시다.


글. 김민정 디자이너

👉 그래픽 디자이너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단행본 북 디자인, 웹 매거진, 인쇄 제작물 등 편집 디자인 작업 외에 '코너 트립'이라는 백패킹 관련 굿즈를 만드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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