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색연필
- 퐁당 에디터
- 2021년 1월 4일
- 3분 분량
아무튼, 이 아니고 어쩌다, 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좋아해서, 마냥 즐거워서 한 것이 아니라 어찌어찌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좋아진 것이다. 어쩌면 취향 혹은 취미라는 것은 그렇게 찾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승전, 색연필은 아니지만 어쨌든 색연필 덕분에 두 번의 태풍과 천만멈춤주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마음이 잠잠할 수 있었다. 부족한 종이와 색연필을 찾아 교보문고 아트숍을 들락거리다 나중에는 화방까지 찾아갔다. 더는 손에 쥐어지지 않는 몽당색연필이 아까워 연필깍지를 사기도 했다. 세상에 연필깍지라니.
그런데 그 연필깍지의 세계 또한 참으로 다양해서 실용적이고 덜 예쁜 화방 제품부터 세계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과 멀리 이탈리아에서 물 건너온 것, 금속부터 나무로 만든 것까지 디자인과 재료와 제조국 또한 다양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하마터면 색연필로 시작해 연필깍지로 끝날 뻔했다. 색연필 그림의 화룡점정은 당연히 색칠하기인데, 색칠을 잘 하려면 우선 잘 지워야 한다. 스케치를 잘 지워야 색을 곱게 칠할 수 있다. 스케치 선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덜 지워내면 아무리 색칠을 잘 한다 한들 스케치 선이 남아 그림이 지저분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꼼꼼하게 싹 지워버리면 어디까지 칠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적당히, 타인에게는 안 보이고 나만 알아차릴 정도로만 지워내야 한다. 색연필을 적당히 뾰족하게 깎는 것도 중요하다. 색연필이 너무 뭉툭하면 발색이 선명하지 않다. 겹겹이 색을 쌓아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있는 능력자라면 모를까 단색을 얼룩지지 않게 말끔하게 칠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초심자라면 적당히 뾰족한 연필선을 꼼꼼하게 포개 칠하는 것 외에 왕도는 없다. 그런데 연필심 끝이 너무 뾰족하면 쉽게 부러져 버린다. 그럴 땐 마음한 구석에서도 툭,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부러진 조각은 아까워도 얼른 치워버려야 한다. 작은 조각이 엉뚱한 데서 뭉개지면 애써 그린 그림에 얼룩을 남길 수 있으니 말이다. 색연필 드로잉에 일필휘지 같은 건 없다. 칠하고 또 칠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데 이때 순서가 중요하다. 위에서 아래로, 옅은 색에서 진한 색 순서로 칠해야 망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사람을 그리면서 나무 껍질을 닮은 어두운 갈색인 다크 움버로 머리카락을 칠하고는 같은 색으로 구두까지 칠한 후에 양말은 베이지 색으로 칠하려고 한다면 양말과 구두의 경계는 필히 지저분해진다. 순서를 지키기 않은 대가인 셈이다. 같은 이유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칠하는 것이 유리하다. 왼손잡이라면 오른쪽에서 왼쪽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왼손잡이이지만 연필은 오른손으로 쥐는 터라, 이 규칙이 참 맘에 안 들었다. 그래서 종이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색칠을 해보기도 했는데 헷갈림만 더할 뿐이었다. 물론 색연필도 연필인지라 지우개로 열심히 지우면 지워지긴 한다.
단, 종이에 보풀이 일 정도로 박박 지워내야 한다. 그래도 얼룩이 남는다. 아주 진하고 어두운 색으로 덥지 않는 한 지워낸 흔적을 말끔히 가리기는 어렵다. 망친 그림은 그냥 버려야 한다.
지금껏 그 종이 위에 쌓은 시간이 아까워서 쌓아두어봤자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나게 할 뿐이다.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그린 뒤 맘에 들지 않거나 틀린 부분은 삭제할 수 있는 디지털 드로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연필 그림의 매력이다.
매력의 그림자에 짜증과 좌절이 묻어있다는 건 모른 척 하기로 하자. 왜냐하면 이 과정들을 거치고 나면 내 생각을 내 손으로 시각화했다는 뿌듯함을 엄청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고 문장으로 풀어써야 했던 것들을 그려냈다니! 그걸로 충분하다. 완성된 그림이 스케치한 선대로 칠해졌다면 머리를 쓰담쓰담 해 줄 일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손은 결코 내 마음을 고스란히 그려내지 못한다. 생각한 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냥 마음이 손을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마음이 원하는 결론과 손이 원하는 결론이 같으란 법은 없다. 마음은 마음대로, 손은 손대로 서로의 다름을 그러나 같은 것을 향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덜 서운하다. 내가 어렵사리 그려낸 것을 다른 이가 고스란히 알아차리지 못하면 매우 서운한데다 제대로 보아준 건가 의심스럽기도 한데 내 손과 머리조차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너그러워진다.
언젠가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면, 그때까지 그림을 계속 그린다면 마음이 느끼는 것을 손이 고스란히 그려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때쯤 되면 내 마음과 내 생각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도 타인들이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이제 그림은 다 그렸는데, 색연필 드로잉을 시작하게 한 그림책 클래스가 멈췄다.
이번에도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엄마도 없이, 조리원도 없는 동네에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 동생에게 선물하려고 색연필로 그림까지 그렸는데 코로나 때문에 완성된 글과 그림을 책으로 묶는 단계에서 수업이 멈췄다. 색연필 드로잉은 취미로 남았고, 이제 이 그림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에디터 이명제 👉 에디터이자 칼럼니스트. 9,000km 급 초장거리 연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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