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데려온 남자들
- 퐁당 에디터
- 2019년 8월 26일
- 3분 분량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할 경우,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즐겁거나, 싸우거나. 후자를 피하기 위해 나는 차라리 마음 편하게 혼자 다니는 편이지만 예외도 있다. 엄마와의 여행이다. 나에게 있어 엄마는 둘도 없는 여행 메이트다. 50대 후반 여자들의 흔한 ‘손주’와 ‘사위’ 자랑거리를 안겨줄 수 없으니 ‘딸과 자유여행 간다’는 자랑거리라도 마련해주고 싶은 나름의 전략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죽이 잘 맞는다.
집에서 툭하면 싸우지만, 집을 벗어나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사진 한 장 찍고 꺄르륵, 지나가는 사람 보고 꺄르륵 웃기도 하지만, 엄마의 사교성(이라고 쓰고 오지랖이라고 읽는다)이 한몫하기도 한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최고의 마당발”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엄마는, 전국 팔도에 심지어 미국에, 말레이시아에, 터키에도 친구들이 있다. 요즘 말로 ‘인싸’에 가까운 엄마의 성격 덕분에 여행지에서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남자들로 인한 일들이다.

5년 전쯤 제주도에 갔을 때다. 일정 마지막 날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는 일요일이라 그랬는지 한산했다. 손님은 우리 둘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까지 셋. 아니, 엄연히 ‘게스트’라고 따지자면 우리뿐이었다. 그 청년은 몇 주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전주가 고향이라던 청년은 수줍음이 많아 보이긴 했어도 우리 모녀에게 퍽 살가웠다(손님은 우리뿐이었으니). 그는 제주도가 좋아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 돈과 차를 판 돈을 싸들고 무작정 제주로 내려온 지 8개월째라며 다소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썰을 풀었다. 그런 청년의 모습은 엄마의 오지랖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튿날 엄마와 나는 제주도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앞두고 청년과 함께 조식을 먹고 있을 때였다. “저도 오늘 여기 떠나요. 근데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네요.” 청년의 말에 엄마는 덥석 동행을 제안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여자 둘이고, 이제 처음 본 남자인데 같이 다니자고? 사람을 잘 가리는 나로서는 불편하고 꺼림칙했지만 청년 앞에서 티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그렇게 우리 셋은 함께 렌터카를 타고 김영갑 갤러리와 성산일출봉에 들렀다. 청년은 차를 태워줘 고맙다며, 자신이 늘 들고 다니는 대포 카메라 같은 DSLR로 엄마와 나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후에 그가 메일로 보내준 사진은 그야말로 작품이었다. 엄마 덕분에 우리 모녀는 제주도에서 뜻하지 않게 무료로 스냅사진 촬영을 하게 된 셈이다.
스페인에서는 남자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었다.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타고 당일치기로 세고비아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시내를 둘러본 후 다시 마드리드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익숙한 한국어의 대화. “형, 나 배고파” “야! 30분 전에 맥도널드 갔다 왔잖아!” “그래도 배고픈데 어떻게 해…” 고개를 돌려보니 앳되어 보이는 한국인 형제가 뒤에 서있었다.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해 사회에 나온 형이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고등학생인 동생도 데려가라며 두 형제를 스페인에 보냈다고 한다.
형제가 스페인에 온 이유는 오직 하나, 축구였다. 바르셀로나 ‘캄프 누’ 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1인당 약 20만 원의 입장권을 산 직후라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던 둘은 빵과 햄버거로 허기를 달래고 있던 것이었다. 딱 그 또래의 아들을 키우는 우리 엄마는 또다시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이번에는 나의 동의하에(?) 형제를 우리가 머무는 에어비앤비 숙소로 초대해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형제는 0.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럼, 그래도 될까요?”
한국과 비교해서 확연히 저렴한 스페인의 식료품비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곧장 까르푸로 가서 두툼한 돼지고기 몇 근과 와인, 상추를 사서 숙소로 향했다. 당시 엄마와 나의 여행은 한 달간의 일정이었기에, 숙소 냉장고에는 우리의 한국 어머니께서 싸들고 오신 김치와 고추장, 멸치볶음과 진미채 볶음이 있었다. 덕분에 마드리드의 한 가정집에서 그야말로 ‘한국인의 밥상’이 뚝딱 차려졌다. 뒤돌아서면 허기질 나이의 두 아들은 허겁지겁 삼겹살을 해치웠다. 족히 3근은 되는 양이었다. 엄마의 얼굴엔 잘 먹는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 미소’가 가득했다. 싹싹한 형은 고맙다고 연신 허리를 굽혔고, 동생에게도 인사를 하라며 허리를 찔렀다. 그 상황에서 엄마는 왜 큰형이라는 아이와 카톡 친구를 맺었는지 모르겠지만, 형제는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간 후에도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국에 돌아온 우리 모녀 역시 한동안 엄마의 카톡 친구 목록에 떠있는 큰형의 프로필 사진 –교관 출신임을 자랑하듯 빨간 모자와 선그라스를 낀– 을 보며 그날의 황당하면서도 웃지 못할 삼겹살 만찬을 추억하곤 했다.
엄마가 데려온 남자들과 나 사이에 썸은 없었냐고 묻는다면, 없었다. 그저 그들은 엄마에게 있어 진짜 “아들 같아서” 데려온 사람들뿐이었으니까. 여전히 손자와 사위 자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딸은 “엄마, 여행 가자”는 말밖에 할 수 없지만, 누가 알겠는가? 훗날 엄마가 데려온 남자가 사위가 될지도.
고주희 에디터
👉 펑션의 콘텐츠 에디터. ‘Yolo’와 ‘탕진잼’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일년에 한 번 이상 여권에 입국, 출국 도장(인천공항에선 더 이상 없지만)을 찍는 것이 목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