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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집 김밥

얼마 전 에스프레소 머신을 샀다. 사는 김에 원두 그라인더도 구매해 매일 매일 향긋한 커피를 즐기고 있다. 오늘은 일도 많고 커피에 의존할 일은 더 많은 것 같아서 평소 보다 원두 양을 많이 해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산 에스프레소 머신은 커피주전자가 세트인 제품이라 주전자에 쓰여진 눈금을 통해 얼마만큼 내려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분명 4잔 분량을 내리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2잔에서 멈춰있는 것이다. 왜 그러지 하고 들여다본 순간 원두 기계가 터져버렸다. 어쩐지... 수상한 스팀이 나오고 소리도 묘하더라니. 나는 수긍하며 터진 원두를 정리했다. 가끔 이렇게 욕심을 과하게 부려서 일을 망치곤 한다. 오늘처럼 바쁜 아침을 더 바쁘게 만든다던지 어제는 김밥을 많이 싸고 싶어서 20줄 분량의 재료를 준비했는데 결국 12줄 정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김밥을 정말 좋아한다. 누군가 매일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해 물어오면 주저 않고 김밥이라 말한다. 처음 신혼집으로 남편과 살던 빌라 근처에는 제일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김밥집이 있어서 자주 사먹었는데 요즘 살고 있는 곳 근처에는 맛있는 김밥집이 없어 아쉽다. 또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진짜 맛있는 김밥은 역시 집 김밥이 아닐까싶다.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질릴 때까지 썰어 먹는다. 그리고 질리면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다시 생각날 때 꺼내 계란을 풀어 옷을 입힌 후 튀기듯 부쳐 먹는다. 나는 내 마음대로 김밥전이라고 부르거나 김밥계란옷이라고 불렀었는데 언젠가 여행 차 부산에 갔다가 분식집에서 김밥 튀김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이런 김밥이 며칠 전부터 앓도록 먹고 싶었다. 엄마가 싸주셨던 참기름향이 가득한 그 김밥이. 특히 엄마는 시금치를 맛있게 무치시는데 시금치가 들어간 아삭아삭한 김밥이 매일 생각났다. 대부분의 집 김밥을 나는 얻어먹는 입장이었다. 할머니가 싸 주셨거나 엄마가 싸주셨던 집 김밥. 먹고 싶다고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이제는 아무도 싸주지 않는다. 엄마는 주방에서 은퇴를 꿈꾸시며 그래, 조만간 싸먹자, 라고 말만 하실 뿐이다. 누군가 싸주기를 기다리다 버티지 못하고 결국 내가 싸기로 했다. 의욕에 가득 차서 당근을 갈고, 밥을 고슬고슬 짓고, 계란 지단을 부치고 햄을 익히다가....... 김밥을 싸는 것에 이렇게나 큰 노동력이 소비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결혼 후에는 6개월 정도에 한 번씩 신랑이 싸줬었는데, 한번 김밥을 싸주면 거의 일주일은 넘도록 생색을 내서 아 진짜! 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너무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김밥은 맛있게 싸졌고 나는 이틀 연속 김밥을 먹었다. 사실 나의 엄마는 손재주가 좋은 편이 아니라 학교 행사 때문에 김밥을 쌀 때마다 굉장히 곤혹스럽고 걱정이 앞섰다고 하셨다. 딸의 소풍에 맛있는 한 끼를 챙겨 보내고 싶은데 모양까지 예쁘면 얼마나 좋을까 늘 고민이셨다고. 요즘에 와서 드는 생각은 엄마는 악력이 약하신 편이라 김밥의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소풍을 갔는데 그날따라 엄마가 싸주신 김밥이 도시락 통 안에서 모두 풀어져 있었다. 나는 전날 미리 다른 친구들에게 네가 싼 참치김밥이 먹고 싶으니 나를 위해 많이 싸오라고 여기저기에 말을 해뒀었기 때문에 엄마가 싼 김밥은 못 먹어도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그때 반 친구 중에 유독 짓궂은 친구 한 명이 매일 나를 괴롭혔는데 왜 도시락을 꺼내지 않냐고 들러붙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낡은 락앤락 통도 부끄러웠고 그보다 더 부끄러운 건 모두 풀어져 김밥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 점심이었다. 도시락 통을 들고 도망다녔지만 결국 짓궂은 친구는 내 도시락을 빼앗았고 반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뚜껑을 열었다. 그러더니 “뭐야, 다 풀어져서 안 연 거였어? 엄마 속상해 하신다.” 하더니 정말 태연하게 내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먹지 말라고 그 뒤로도 몇 번 말했으나 맛만 좋구만, 이라고 하며 그 많던 김과 밥을 모두 먹어줬던 친구.


그때는 집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싫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부끄러웠다. 자주 싸우는 엄마와 아빠가.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앞두고는 더 그랬다. 사복을 입어야 했고 도시락뿐만 아니라 간식, 거기에 용돈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이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나의 사정은 엄마의 사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는 내가 더 싫던 그때. 쉬운 길은 미워하기와 부정하기였다. 덮어두고 모르는 척 하기도 꽤 편한 도피 방법 중 하나였다.


어떻게 무사히 그 시절들은 지나갔다. 여러 번의 소풍과 수학여행은 다행히도 즐거운 기억들을 더 많이 남겼다. 그럼에도 집 김밥을 먹을 때마다 그 시절의 엄마가 생각난다.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 5시부터 김밥을 준비하는 젊었던 엄마의 잠이 덜 깬 어깨가.



👉 그루브 소울(G. 소울)

전설적인 클럽 디제이가 되고 싶었으나 선천적인 박치를 극복하지 못해 은퇴한 뒤 글쓰기에 매진 중입니다. 잘 먹고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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