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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의 고장, 포도의 고장

나는 유배(流配)의 고장이라고 불릴만큼 외지고 동 떨어진 시골에서 자랐다. 구전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유배지로 각광받아서 지금 막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자들이 너도 나도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한양에서 멀지 않은 강원도 어디쯤, 지형이 험해서 오가기가 어려운 동네라서 다시 세력을 모으거나 반역을 꿈꾸기 어려운 곳. 또 저기 어디 남해의 섬만큼 먼 곳은 또 아닌 탓에, 혹시라도 잡음이 생기면 다시 대처하기에도 적당한 거리. 그래서 이곳으로 유배되어 오는 이들은 장기 휴가라고 생각하고 소일거리할 물건들을 싸들고 일종의 안식년을 지내러 오는 이들도 많았다고.


하지만 내가 막상 유배의 고장에 태어나보니 듣던 대로(?) 첩첩산중이라 영화관도 없고, 기다려도 비디오 대여점도 생기질 않고, 00리아, XX날드 같은 패스트 푸드 가게도 없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비디오 같은 건 구경도 못했다. 그나마 학교 옆 공공 도서관이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큰 미디어 아카이브였다. 그때 영화관이나 미술관이 있었더라면 아마 책 따위를 들쳐보는 습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소년이 되었으리라.


사슴과 멧돼지가 생각났다는 듯이 사람이건 자동차건 있는 힘껏 들이박고, 비가 조금만 오면 계곡물이 불어서 학교로 난 길들이 죄다 없어졌는데, 그래서 나는 다른 고장에서도 비가 오면 왕왕 학교를 쉬는 줄 알았다. 운동회 같은 걸 하면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들짐승과 민물고기들을 튀기고 구워서 잔치를 하곤 했는데, 나는 그 축제의 음식 가운데 오로지 사이다, 환타만 열심히 먹었다. 그런 탄산음료가 너무나 귀하고 맛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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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감자와 옥수수의, 유배의 고장에도 큰 이슈가 생긴 적이 있었다. 이곳에 댐을 만들면 그렇게 좋다는 것이다. 남한강 상류 지역이었던 탓에 이곳에 큰 댐을 만들어 고장의 건축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움직임이었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차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잡아 먹을 수도 없는 물고기는 포기하고 댐이나 만들어서 관광지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였을까. 서울 중앙부처에서 내려보낸 사람들이 강 주변 곳곳에 지질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고향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무슨 무슨 추진 위원회도 생기고, 동네 한 가운데 커다란 사무실도 들어섰다. 오래지 않아 서울에서 환경 단체들이 동네에 들이닥쳤다.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강과 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이었는데, 동네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강까지 나가 지질 조사를 막는 등 시끄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것도 무슨 축제의 일부 같았다. 뉴스에 이곳의 소식이 나오고 이런 저런 인터뷰가 뜨기도 했다. 시끌벅적 사람 사는 동네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네 사람들은 댐이 들어설 땅을 너도 나도 사들여서 거기에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농지는 나라에서 수용할 때 더 많은 보상금을 준다는 소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나의 친척들 중 일부도 땅을 사들여서 포도나무를 심었다. 석회질이 많은 땅이라서 포도농사를 하기에 제격이라는 조언 때문이었다. 덕분에 댐 건설 예정지로 확정되기도 전에 강 주변에는 포도밭이 엄청나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물론 포도를 수확하거나 열심히 재배할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달리 댐 건설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포도는 탐스럽게 익어갔다. 어떤 농가에서는 밭을 놀리느니 포도라도 수확해서 팔자고 나서기 시작했다. 마침내 영농조합에서 포도를 특산품으로 취급하기 시작하자는 결정을 내리고 난 뒤 오래지 않아 댐 건설 사업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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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환경 단체 때문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지질 조사 결과 댐을 짓기에는 지반이 취약했다는 분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아무튼 서울의 중앙부처에서 내려온 무슨 무슨 연구원들도 돌아가고, 환경 단체들도 함께 사라지고 나니 탐스러운 포도밭만 남았다. 나의 고향이 옥수수, 감자에 이어 포도의 고장이 된 이유다. 고향에 내려가 잘 익은 포도를 먹을 때마다 나는 조금 서글프다. 댐 건설을 추진할 힘도 없고, 그렇다고 환경 보호를 가열차게 외칠 고집도 없는 내 고향의 특산품이 남의 속도 모르고 아주 달고 맛있기 때문이다.

에디터 김선형 👉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미디어를 운영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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