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는 진짜라서 전해진다
- 퐁당 에디터
- 2021년 9월 7일
- 2분 분량
소셜 미디어로 도배된 세상을 마뜩잖게 생각하지만, 좋아하는 페이스북 기능도 하나 있다. 지인들의 생일을 알려주는 기능이다. 어디 따로 적어 놓지 않아도 오늘이 누구누구의 생일이다 알림을 보내주니 잠깐 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좋다.
전에는, 흔한 기프티콘 선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오면, 차라리 선물을 하지 말지 뭘 이런 의례적인 걸 보내나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는 뭐든지 선명했다. 선물에 대한 생각도 그랬다. 정말 해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가 감동하거나 깜짝 놀랄 걸 해주자, 그렇지 못할 선물이라면 그냥 하지 않는 게 담백하다-고 생각했다. 선물이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할 때, 내 마음이 흔하고 사소한 무언가로 치환되는 게 싫었던 것이리라.
요즘은, 페이스북이 생일을 알려주면 그에게 기프티콘이나 다른 배송 가능한 소소한 선물을 보낸다. 예전, 어떻게 하면 상대가 놀라고 감동할까 궁리하던 정성은, 어떤 카페의 커피를 고르면 그가 매장에 방문하기 좋을까 궁리하는 정성, 커피와 함께 먹을 무엇을 곁들인 기프티콘을 고르면 그의 취향에 맞을까 궁리하는 정성으로 바뀌었다. 7,500원 짜리 기프티콘은 너무 성의 없어 보일까, 19,800원 짜리는 또 너무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까 작전(?) 짜는 정성, 아이가 있으니 커피보다 아이스크림 케잌이 더 좋지 않을까 고민하는 정성으로 바뀌었다. 깜짝쇼는 아니지만, 그런 정성들에도 물론 노력이 수반된다. 이를테면, 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드립백 커피 기프티콘을 보낼 때, 아무래도 응급의사라 근무 중 짬 내 멀리 가기 힘들 테니 지도 앱을 이용해 그의 병원에서 제일 가까운 카페를 찾아보는 식이다.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경제적 여유, 생활의 여유를 잃은 탓도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에게 전하는 내 마음이, ‘어떤 매개’로 전해지느냐 보다 ‘전해지느냐 전해지지 않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게 훨씬 큰 이유다. 더 정확히는, 전해지느냐-보다 내가 전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감정들은 '결핍'을 모르던 때보다 훨씬 더 절절하고 뭉클하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 보고 싶다고 느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가 알아주는 것,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상대가 알아차리는 것일 리 없다. 그가 놀랐느냐 그를 감동시켰느냐 하는 것도 실은 본질에서 멀다. 너무나 단순하게도, 본질은, 소중한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내 쪽에 있는 것들이다. 내 그리움, 내 사랑, 내 존경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내게 ‘진짜’인 감정은, 올곧고 선명해서가 아니라 그냥 진짜라는 그 이유만으로 반드시 상대에게 전해진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 현카피
BBDO, HSAD, 대홍기획, 한컴 등을 거치며 계속 카피를 써오고 있는 29년차 카피라이터. 글과 사진, 음악을 담은 에세이집 [하늘 위의 지하실]을 냈다. 현재 DDB KOREA에서 ECD로 일하며 주로 경쟁 PT로 정신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