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스탄 게츠는
- 퐁당 에디터
- 2019년 8월 20일
- 3분 분량
연주할 때 술에 취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고, 녹음할 때는 절대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술’ 대신에 ‘헤로인’을 넣어 저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대단하다. 스탄 게츠 평전(1)을 읽으며 두쪽 걸러 한 장씩 소개되는 명반들을 따라가며 들어 본다. 며칠 전 하이엔드 오디오샵에서 오리지널 LP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걸어 9천만 원짜리 스피커로 감상했던 곡들이다. 집에선 애플뮤직에 블루투스 기술에 감사하며 듣는다. 이렇게 서울의 어느 공동주택 거실에서 스탄 게츠의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스웨덴 사람 모니카 게츠의 계좌에 저작권료가 입금되는 감사한 시대.
스탄 게츠의 아름답고 때로는 황홀하기까지 한 연주를 듣다가 알코올과 백색 가루 같은 것을 떠올리는 일은 고통스럽다. 요즘은 누군가 옆에서 담배 연기를 뿜으면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하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스탄 게츠의 시대엔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도 담배를 피워댔다. 하지만 스탄 게츠의 시대에도 마약 소지와 복용은 범죄였다. 하지만 스탄 게츠는 부지런히 연주하고 녹음해 돈을 벌어 약값을 충당해야 했다. 첫 번째 아내 베벌리도 심각한 중독자였으니 그 노력은 배가되어야 했을 것이다. 같이 무대에선 연주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제가 만난 어느 음악가보다 가장 잘 정돈된 사람이었어요.”(르로이 비네거, 베이시스트)

그가 정말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낼 때는 약을 중단하려 했을 때라고 해야겠다. 1954년 2월 5일 미국 서부 공연 투어를 떠날 때 스탄의 수중에 헤로인은 없었다. 지난 연말 집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스탄은 두려움에 떨며 권총을 겨눴고 (권총은 곧 떨어트렸고) 집에서 발견된 마약은 없었지만 몸에 남아 있던 주사자국 때문에 체포되었다. 스탄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재판에서 당연히 유죄 판결.
2월 17일부터 한 달간 수감 예정인 게츠는 2월 5일에 투어를 떠났다.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약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게츠도 그랬다. 하지만 쉽게 중단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걸 마약이라고 부르겠나. 극심한 금단현상으로 괴로워하며 주변을 괴롭히던 게츠는 투어 5일째 되던 날 아침에 숙박 중인 호텔 앞 약국에 갔다. 거기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어 권총을 가진 척하며 모르핀을 내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어설픈 연기력은 한눈에 들통이 날 만했다. 줄행랑을 놓은 게츠는 호텔에 돌아가 약국에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순진한 사람 같으니, 약국에서 전화를 받은 경찰은 게츠를 쉽게 속여 호텔 방번호를 알아내 복도에서 서성이던 그를 체포했다. 그리고 게츠는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체포되기 직전에 신경안정제 60알을 한꺼번에 삼켰던 것이다. 그의 의식은 3일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언론은 “마약에 미친 음악가, 강도 시도 후…”

이렇게 신이 난 듯 남의 불행을 옮기고 있으니 내가 재미없는 빌 브라이슨이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집에 스탄 게츠의 음반 몇 장이 있다. <Jazz Samba>, <Jazz Samba Encore>, <Getz and Gilberto> 모두 보사노바다. 사실 스탄 게츠의 음악 경력 중 보사노바를 연주한 시기는 3년 정도에 불과하다. 스탄 게츠는 15세에 프로 연주자가 되어 15세부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17세부터 헤로인에 중독된 사람으로는 기적적일 정도로 64년을 살았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음악을 하면서. 그런 그에게 보사노바의 3년은 확실히 짧지만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적이었다. <Jazz Samba>는 재즈 앨범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이듬해에 낸 <Getz and Gilberto>는 2위를 차지하는데 그해에 비틀즈가 미국에 데뷔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비틀즈는 팝음악계의 캡틴 마블이었던지라 타노스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스탄 게츠의 70년대 앨범 <Captain Marble>을 들어 본다.
음악 좀 아는 사람일수록 스탄 게츠의 연주에 대한 상찬의 수준도 높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 앨범에 대해 “그 음악의 높은 질과, 우수한 자생적인 자연스러움과, 그 양자가 뒤섞인 기적적일 정도의 임장감에 감동하게 된다.”(2)고 어떤 곡에 대해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매력적”(3)이라고 썼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스탄 게츠 평전 <Nobody Else But Me>에서 1956년 작 앨범 <The Steamer>에 대해 이렇게 썼는데 “잘 준비되었고, 성숙하며, 달콤함과 제어된 열정으로 가득하다”는 표현을, 하지만 스탄 게츠의 인생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해 줄 수 있다면.
1) Nobody Else But Me: a Portrait of Stan Getz, 데이브 젤리, 류희성 옮김, 안나푸르나, 2019년 출간
2) Stan Getz at Storyville Vol. 1 & 2, 1951년 발매
3) Nobody Else But Me, 1954년 1월 23일 녹음, 1957년 발매 (앨범 <Stan Getz and the Cool Sound> 수록)
글. 에디터 조빔
👉 출판편집자. HB 프레스를 운영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정직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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