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고 있습니다
- 퐁당 에디터
- 2020년 1월 31일
- 3분 분량
결혼하고 두번째 이사에 도전하면서 요즘 새로운 ‘똑딱이 일상’이 생겨났다.
‘퇴근한다. 옷을 갈아입는다. 밥을 먹는다. 그리고 버린다.’
서울에 상경한 것이 고등학교 졸업한 직후였으니,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수많은 물건들은 연식이 20여 년은 족히 넘은 것들이다. 학창시절 열광했던 <슬램덩크> 전권,<초밥왕>, 영어공부 좀 하겠다며 사들인 시드니 셀던의 영문 소설책 같은 류가 그렇다.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바리바리 싸들고 가고 싶은데, 곧 이사갈 집이 손바닥이다. (진심이다. 그리고 내 손바닥은 일반인에 비해 크다)
기실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있으니 독립할 수 있게 방을 내어주겠노라 선언한 것이 화근이었다. 방을 내어주자니 버려야 했다. 그런데 무언가 버리는 행위는 전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옷만 해도 그랬다. 무려 15년 전 취업에 성공했다고 노모가 ‘큰맘 먹고’ 사준 나의 첫 정장이 대표적이다. 여성 정장집을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찾았던 기억, 제법 멋들어진 상의를 집어올리고 입어보기까지 했는데 달려있는 가격표를 보고 뒷걸음질을 했던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당신 옷엔 만원 한장 쓰지 않았던 구두쇠 엄마가 선뜻 지갑을 열어서 동공 확장, 코끝 시큼했던 순간.

편린으로 존재하던 이 모든 것들이 한번에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옷들은 더 했다. 이건 오랜 친구가 큰 아이 돌이라고 사보낸 옷, 이건 작은 놈이 태어나 처음으로 입은 배냇저고리. 이젠 다 커서 입지도 못할 옷인데, 자꾸 미련이 남았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이랬다. 나는 질척이는 여자인 것이다. ‘혹시’ 또는 ‘만약에’ 라는 가정이 덧붙을 수록, 나는 물건 앞에서 질척댔다. 헤어져야 하는데도, 쉽사리 헤어지질 못했다. 버리려고 쌓아두기까지 한 물건들이 퇴근할 때마다 자리를 그냥 지키고 있었다. 출근길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집에 가면 꼭 버려야지’라고 결심도 했다. 하지만 퇴근하고 돌아가 대면하면 마음이 또 흔들렸다. 나는 질척여도 너무 질척이는, 소위 ‘과거에 얽매이는’ 여자인 것이었다. 왜 쿨하지 못할까. 이별해야 할 물건을 쌓아놓고 생각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니 이건 ‘문제’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의 ‘원인’이란 것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쓰레기를 앞에 두고 과하게 고민하는 것 아니냐. 소위 ‘진지충’이라고도 욕할 법 하지만, 내겐 중요한 일인 것은 분명했다.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나는 같은 일을 계속하고 살아갈 것이 명확하니까. 도합 두시간이나 걸리는 출퇴근길에 생각을 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질척이게 하는 것일까. 사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똑 부러지는 답 따윈 찾지 못했다. 다만 근 한달에 걸친 고민(?)의 결론은 이거였다.
나는 불안하다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잊을까봐’ 두려운 데서 시작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 말이다. 나는 명석한 인간은 아니어서 곧 잘 잊어버린다. 내 삶의 조각들이나 마찬가지인 물건들에 담긴 따뜻한 추억들을 까먹고 살아왔다. 전 직장 사수였던 멘토가 이직하는 날 건넨 몽블랑 펜이 그렇다. 필통 속에 늘 간직하고 지내왔다. (무려 8년 간이다) 그런데 쓰라고 준 그 펜은 한번도 제대로 써보질 못했다. 그냥 들고만 다니는 것이다. 물건에 담긴 그 마음이 고맙고 소중해서, 차마 써볼 생각도 못한 것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나는 ‘잊고 있었다’.
이삿짐을 싸면서 발견한 오래된 다이어리, 취재수첩도 그랬다. 여태 써온 취재수첩이 한두권도 아닌데, 나는 ‘혹시, 만약에’란 생각으로 수첩들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왔다. 내가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수첩들은 혹시 나중에 필요한 순간이 생길까봐 버리지 못하는 대상이었다.
왜 나는 불안할까. 이삿날이 가까워지면서 큰 맘을 먹었다. 어떻게든 이 난제를 풀어야 한다. 집은 좁다. 그러니 버려야 산다. 살려면 버려야 한다. ‘살다>버리다’의 가치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100L 쓰레기 봉투 2장이었다. 마트로 달려갔다. 심지어 나 조차도 구부리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쓰레기 봉투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버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집에 와서 하룻밤 자게 될 때를 생각해서 구비해 둔 베개들, 10년은 된 큰 아이의 아기 담요를 넣었다. 다소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살아야 한다. 살려면 버려야 한다. (아, 이 비장미란!! )
두 봉지를 꽉 채워담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불안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였다. 물건에 담긴 기억들을 잊어버릴까봐, 언젠가 다시 쓸 때가 필요할까봐 더욱 질척였다. 사실은 명확했다. 나의 이 불안함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외엔 없다. 용량이 작아 자꾸 잊어버리는 내 뇌의 문제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신을 제외하곤 내가 유일했다. (혹시 뇌가 좋아지는 약이 있다는 걸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연락을)
이삿날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여세를 몰아 대형 쓰레기 봉투 두개를 더 샀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을 쓴 어느 저자는 사진을 찍고 물건을 버린다고 했었지만 나는 그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엔 한번 내 기억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어쩌겠는가. 이것이 인생 아닌가. 죽을 때도 빈손으로 돌아가는데,류의 개똥철학을 들이대면서. 소중한 건 사람이다. 물건이 아니다. 그러니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보기로 하자로 위로를 대신했다.
침대와 쇼파, 결혼할 때 산 협탁까지 모두 버리고 나니 남은 것은 가전제품을 제외하고 가구라고 부를 만한 것은 나무 식탁 하나였다. 그런데 제법 기분이 괜찮다. 심지어 새로 시작하는 기분마저 든다. 물건은 떠나보냈지만 내겐 제법 괜찮은 추억들이 있지 않은가.
p.s. 지난 번 퐁당 글에서 등장했던 식물 ‘친구’들 가운데 알로카시아는 결국 운명을 다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 구근을 회사로 이송해 책상 앞에 두고 돌봤지만 이 못난 주인 탓에 결국 사망했다. 나와 함께 2년을 살았던 알로카시아에게 깊은 감사와 사죄의 말을 전해본다.
김현예 기자 👉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며 틈틈이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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