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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는 데 필요한 힘

샘이 나 책을 읽을 마음을 먹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같은 경험을 하고도 누군가는 책을 내고 누군가는 그 책을 읽고 있다. 하지만 독자가 있어야 비로소 글쓴 이의 시간이 보람이 된다, 라고 평소 생각해왔으므로 저자의 충실한 보람이 되기로 했다.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을 보았을 때 내심 반가웠다. 수영장에 둥둥 뜬 사람들과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어우러진 표지에서 짐작되는 바가 있어서 그랬다. 저자는 아마도 성인이 되어 수영을 배웠을 것이며, 열심히 할수록 몸이 물속에서 가라앉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힘을 빼려고 애쓸수록 힘이 들어가는 신비의 세계, 내 몸이란 세계.

책에 대한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힘 빼기의 기술을 요목조목 일목요연하게 알려주지는 않으리라는 예상은 맞았다. 읽다가 시간이 되면 접고 요가를 가리란 계획은 틀어졌다. 대단히 흥미롭거나 신박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알 것 같은 마음들이 자꾸 엿보여서 반가웠다. 그래서 요가 가는 걸 미루고 또 미뤘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책이라는 것을 자랑하느라 그만 그날의 마지막 요가 수련에도 늦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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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다정한 시선도 좋았지만, 글에 등장하는 그의 친구들이 더 좋았다. 동네 친구부터 여행지에서 스친 사람까지 하나같이 다정하고 평범해서 호감이 갔는데, 특히 나는 힘 빼기라는 복잡미묘한 기술을 주사 맞기에 빗대어 설명한 그의 친구가 좋았다.

“병원 가서 엉덩이에 주사 맞을 때 말야, 간호사가 ‘엉덩이 힘 빼세요’ 하면 엉덩이에 힘을 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가 버린다구.”

저 마음을 아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수영장에서, 요가원에서, 병원에서 심지어 목욕탕에서 세신 여사님께도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힘 빼세요.” 누구도 내게 힘 빼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는 힘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다소 억울했는데, 억울하다고 하면 상대가 나를 뭥미? 하는 표정으로 바라볼 것이 뻔해서 차마 되묻지도 못했던 시간이 대체 얼마란 말인가. 그런데 세상엔 그 심정을 아는 사람이 여럿 있을뿐더러 이젠 책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었다. 나는 가르치고 이끄는대로 잘 따라가고 말도 잘 듣는 편이며 칭찬받는 걸 좋아해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더 잘하려고 더 열심히 하는 편이다.


모범생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모범생이 공부를 잘하지만 모든 모범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힘 빼는 것도 잘 하려고 열심히 힘을 빼려고 애쓰는데 그러다 보면 보면 필연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수영을 배울 때 자유형을 잘하려고 팔을 쭉 뻗으면 다리가 가라앉았고 속도를 내보려고 발차기를 열심히 하면 사방팔방으로 물은 튀는데 내 몸은 제자리에 동동 떠 있었다. 게다가 부끄럼도 많고 겁도 많아서 잘 못 하는 걸 하려면 얼마 되지도 않는 근육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고, 낯선 상황에서는 긴장해서 근육에 힘이 빡! 들어갔다. 잘하려고 해도 못했다. 아니, 잘 하려고 할수록 못했다. 힘빼기에 있어 나는 더없이 무능했으며 나아질 방법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니 세상 쉽다는 사바사나가 내겐 세상 어려운 동작일 수밖에. 송장 자세라고도 부르는 사바사나는 누워 쉬는 것이다. 사지와 함께 몸도 마음도 생각도 내려놓고 쉬라는데, 잠이 들어도 좋다는데, 나도 한숨 자고 싶은데, 그럴수록 오만 생각이 줄을 이어 누워 있는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한 번은 사바사나 도중 ‘지각이야! 출근해야 해!’ 하는 생각과 함께 몸을 벌떡 일으킬 뻔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오전을 요가로 소일하던 때인데, 아마 설핏 잠이 들었던 것도 같은데, 갑자기 깨 버렸다. 상체가 벌떡 들리려는 순간 평소 힘주는 게 기본인 나의 팔다리가 기특하게도 또 힘을 주며 나를 반듯하게 눕도록 했다. 힘 빼기에 잠시 성공했으나 힘 주기 덕분에 망신을 피한 날이었으니 성공이자 실패였던, 다행이자 실망이었던 날이었다.


그날 이후 사바사나는 더 잘하고 싶어서 더 안 되는 동작이 되었다. 반듯하게 누우려고 팔다리에 집중하다 보면 또 힘이 들어갔다. 왼쪽으로 약간 기운 목을 반듯하게 내려놓으려 할수록 힘이 들어갔다.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은 힘을 빼려는 부분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른 다리가 툭, 풀렸다. 그리고 순삭! 사지를 반듯하게 내려놓고 눈을 감고서 오만 가지 생각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툭, 감각과 생각이 사라진 찰나가 있었던가, 멀리서 싱잉볼이 울렸다. 고대하던 힘 빼기의 기술을 드디어 터득해냈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른 다리만 그랬다. 힘이 풀리고 나서야 비로소 왼 다리와 양팔에는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오른 다리가 날마다 힘 빼기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신비로운 내 몸이란 세계는 좀처럼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품었다.

그리하여 힘 빼기의 기술(技術)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 글은 알 수 없는 힘 빼기란 기술에 대한 기술(記述)에 그치게 생겼다. 이 비겁한 마무리를 어찌해야 하나 싶지만 여전히 힘을 뺄 줄 모르므로 언젠가 힘을 빼게 되는 그 날을 기약할 수밖에. 



홍보 마케터 이명제 


👉 홍보마케터. 요즘은 요가와 더불어 어린이책 홍보 일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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